저자의 서언-내가 알고 있는 양빈
저자서언-내가 알고 있는 양빈
이 책은 원래 <<포브즈>>중국 부호 랭킹2위 양빈에 관한 전기여야 하였다.후에 양빈이 조선에서 특수한 역사시기에 특수한 신분과 기회을 구비하고 “신의주특별행정구”의 장관으로 되였기에 이책은 응당히 <<신의주특구장관 양빈 >>의 전기로 되여야 한다.
2002년3월6일 처음으로 인터뷰하면서 양빈을 알게되고, 그가 친히 전화하여 나을 그의 전기작가로 초청한후부터, 나는 7개월이나 그의 옆에서 “신의주특구”기본법의 초안,담판 을 비롯해서 10월4일전까지의 양빈의 경력을 거의 전부 목격하였다.그러나 하나 또 하나의 농담을 하는 역사 때문에 나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아연했다.
2002년10월4일새벽5시10분에 양빈은 심양경찰에 연행,후에는 “가택연금”당하였다.중국외교부 신문발표인 장계월은 이에 대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해 “양빈 및 그가 속한 중국의 일부 기업들이 여러 종목의 위법과 법규에 어긋나는 혐의가 있기에, 중국의 공안부문에서는 이미 법에 따라 양빈에 대해 ‘가택연금”조치을 취하였으며, 계속 그에 대해 법에 따라 조사할것이다.”라고 대답했다.
2002년11월27일 신화사에서는 “11월27일,양빈은 허위출자,뇌물제공,계약사기,농지불법점용 등 경제범죄활동혐의로 현지 공안기관에 의해 정식체포되였다”고 보도하였다.
즉 심양경찰측에서는 양빈이 상업활동중,중국의 해당 법률을 위반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2003년6월11일-13일, 심양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이 안건에 대해 3일동안 법정심판을 진행하였다.필자는 법정에서 방청하면서 상세한 기록을 진행하였다.
2003년7월14일,심양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양빈과 그의 해당 기업에 대해 1심판결을 내렸다.피고 양빈은 허위출자죄,농지불법점용죄,계약사기죄,단위뇌물수수 및 제공죄,금융증표위조죄로 유기징역18년에,벌금230만위안을 처하였다. 양빈은 이에 불복하고 료녕성고급인민법원에 상소하였다.
2003년9월6일~7일, 료녕성고급인민법원에서는”양빈안건”에 대해 법정에서 증거확인등 심리하였다.7일오후5시에 “원 판결은 정확하고 ,범죄사실과 정황 및 사회에 대한 위해성 정도,형벌이 적당하고 재판절차가 합법적이다. ’중화인민공화국형사소송법’제189조제1항의 규정에 따라 원 재판을 유지하며 본 결정은 종심결정이다.’”라고 선포하였다.
필자는 시종 법정에서 방청하였다.
양빈안건은 끝내 종결하였다.
양빈신화는 끝내 파멸하였다.
그러나 양빈신화와 양빈안건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색을 남겨주었다.
양빈의 “흥망의 돌변”은 여러 요소로 인해 조성하였다.여기에는 개인적,환경적,매체물,사회적 심지어 제도적 등등 여러 요소와 인과관계가 포함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양빈”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원인을 찾는데 단서을 제공할수도 있으며 심지어 독자들의 깊은 사색에 보다 진실한 세부적인 요소을 제공하여 줄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양빈의 출신과 가정,창업과 네덜란드촌을 형성할때의 경력에 대해 관심을 가질뿐만 아니라, 어떻게 신의주특별행정구특구장관으로 되였는가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질것이라고 믿는다.필경 그는 “신의주특구”기본법과 조선측과의 담판을 영도하고 참여완성하였다.김정일장군이 결정을 내린후 신비롭고 50년이나 봉폐된 조선의 대문을 열어 놓았다.
만약 양빈이 중국에서의 상업활동에서 중국의 법률을 위반하였다면,그는 반드시 현실에 직면하여야 한다. 법률은 누구에 대해서나 공정하거 엄숙한것이다.그러나 그는 조선 대외개방의 대문을 여는데 참가하였으므로 조선당대역사에 영원히 기록될것이며 동북아평화와 발전의 역사에도 기재될것이다. 공과 過,죄와 벌은 서로 다른 두가지 일이다.
조선에서 ‘신의주특구’건설하는데 대해 많은 전문가,학자 및 친구 심지어 일본의 몇명의 우호인사들도 나와 같은 동감이다.조선이 대외개방의 문을 열어놓는 것은 좋은 일이며 이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주변국의 평화와 발전,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이로운 일이다.조선반도 및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발전은 조선과 한국말고도 일본,러시아,중국도 그안에 포함되여 있으며 도 밀접히 유의하고 있다.중국,러시아는 조선과 전통적인 우의을 갖고 있고, 한국과 조선은 원래 같은 나라,같은 민족이며 형제지간이다.한국의 영도자 김대중 및 신임 대통령 노무현도 평화협상을 통해 형제을 원조하고, 한반도의 안전과 안정,’평화통일’목적에 달성하려고 했다.미국정부 특히 부시정부의 대조선정책은 우둔하고 실패적이였다.저명한 외교사상가 죠지.컨난은”외교영역에서 미국인은 언제나 이따금씩 복음과 같은 이상주의가 폭발하여 나오고 있다.강열한 청교전통은 그들로 하여금 종종 黑이 아니면 白인 판단방식을 형성하였다.그들은 자신의 관념에 따라 외부세계을 개변하려고 갈망하며 이에 따르지 않으면 적으로 여겼다.”라고 하였다.
<<아주우시보>>10월25일의 문장”미.북 핵이야기:빈말연속”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평하였다.”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예는 종이한장에 빼곡찰 정도이다.1994년 제네바협정에서 미국은 명확히3개월내로 무역과 경제장벽을 내릴것이라고 하였다.협정에서는 미국과 북한은 상호 대방수도에 외교연락소을 설치하며,연락소의 발전상황에 의하여 대사급승인을 하기로 하였다.협정에서는 2003년전으로 북한에 경수반응로을 제공키로 하였다.”,”북한은1993년부터 5년안에 원거리미사일실험을 중지하며,교환조건으로 미국은 북한에 원유와 식품을 제공한다.미국은 북한에 경수반응로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좀더 시간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북한은 약속대로 5년내 미사일실험을 중지하였으며 ,외국인들이 예정대로 경수반응로건설 시작하도록 인정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무엇을 하였는가? 아무도 하지 않았다.그는 모든 경제부담을 한국과 일본에 밀었고,공사대표로서의 책임을 밀었다.”<<아주우시보>>의 평론은 적절하고 신복할수 있다고 하여야 한다.
부시의 대북정책은 전임 클린턴의 완화의 방향과 달랐다.그의 “축심국”정책은 조선반도의 긴장정세만 강화하였다. 북미대화와 제네바협정의 이행만이 조선반도의 긴장한 국면의 완화 및 조선반도무핵화 해결을 위한 정확한 길이다.
세계의 지혜로운 지도자와 정치가들은 대화만이,정치협상만이 나라지간의 문제을 해결하는 정확한 길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문제의 해결은 국제사회, 우선은 동북아지역의 국가들이 공동으로 조선의 대내개혁,대외개방정책을 지원하여 추진하여야, 평화와 발전의 길에 올라 설것이다.과거 덩쇼우핑동지가 “개혁개방”을 제출하여 중국이 경제가 번영하고 세계시장에 통합되였으며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의 기초,세계평화와 발전의 중요 역량으로 되였다.
우리는 조선의 국문을 열어놓은 “양빈신화”을 통해 , 조선과의 “신의주특구”기본법 담판경력을 통해 김정일 장군은 조선의 개혁과 개방을 완성시킬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완전히 구비하였으며, 조선을 국제사회에 융합시킬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수 있다.조선인민은 평화을 열애하며, 그들은 평화와 발전의 길을 갈것을 간절히 바란다.부시정부의 “黑이 아니면 白이다”는 판단방식과 조선을 막힌 길로 밀어놓고,조선반도의 긴장정세만 강화하는 그 어떤 정책과 조치는 조선과 조선인민에 대해 무책임적인것이며,동북아 각국의 평화와 발전에 대해서도 무책임적인 것이다.
나는 이책을 빌어 조선반도을 관심하는 독자들에게 사실과 참고을 제공하여,이들로 하여금 조선이 얼마나 개방된 특구을 건설하고 국제사회에 점차적으로 융합되길 원하는가을 요해하길 바란다.
우리는 응당히 조선인민에게 이 기회을 주어야 한다! 이가 이 책을 쓰게 된 나의 최종 목적일수 있다.
이로써 서언을 마친다.
저자 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