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다시 네덜란드촌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
신의주 특구에 대한 단둥시부푼 기대
평양에서 돌아오자 신의주에 특구를 건설한다는 소식이 퍼져 단동 시민들 속에서 굉장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단동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의 압록강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면 신의주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이 도시의 경제건설과 발전은 연해의 다른 개방도시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신의주 특구설립은 단둥시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될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이때문에 나는 곧바로 단둥으로 달려가 그곳의 지방관리들과 경제계 인사들,나아가서는 수많은 시민들을 방문하였다.
먼저 중국공산당 단둥시의 서기 차이톄푸씨를 탐방하였다.그는 북한이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한 것이라는 데 대해 단둥시의 간부들과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들었지만 랴오닝성위의 통지나 지시 같은 것은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시위서기 신분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고 단지 단둥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할뿐이라고 하였다.
차이톄푸씨는 이렇게 말했다.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한다는 소식은 단둥시 간부들 가운데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의견들도 서로 같지 않다.어떤 사람은 북한이 최근 몇년 간 너무 가난하며 무역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남이 낙후하다는 소리 하지 말고 남들과 비기지도 말며 우리 자신이 잘 생각해 보라.1960년대 1970년대는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더 못 살지 않았느냐?도시환경이나 생활수준이 그들보다 못했다.1980년대부터 우리가 덩샤오핑 동지의 개혁개방정책 때문에 비로소 차츰 좋아진 것 아니냐.조선도 개방개혁하면 재빨리 우리를 따라올 것이다.나라가 작고 인구가 적고 단일한 민족이어서 부담도 작고 일하기도 쉽다.게다가 김정일의 말 한마디면 다 되는 나라 아니냐.김정일의 조선에서의 위상은 그때 우리 모씨 어르신의 중국에서의 위상보다 못하지 않다.”
신의주 특구를 어떻게 보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변경도시의 지도자로서 저는 조선인민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우리 단둥 사람들은 중조 두 나라는 입술과 이의 순치관계라는 데에 감정이 아주 깊습니다.신의주에 특구를 설치하면 단둥이 먼저 실리를 보게 될 것니다.그들이 건설작업을 하려면 인력이 필요할 것이고 먹고 마시고 쓰는 것 또한 우리가 다 공급해야 할 것이니까요.”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하면 단둥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라는 나의 물음에 차이톄푸씨는 대답 이렇게 반문하였다.
“우리는 아직 신의주특구 설립의 구체적 상황을 알지 못하는데 당신들이 소개해줄수 없습니까?”
나의 취재에 동반한 유라시아그룹 부총재 스쥔이 그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우리는 조선에 가서 주로 ‘기본법’에 대하여 담판을 하였습니다.김위원장님의 배려하에 큰 틀을 이미 짰으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세부적인 문제는 해결이 쉬울 것입니다.협의를 체결하면 조선 최고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입니다.”
차이톄푸씨는 머리를 끄덕이며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던 일을 회고했다.
“김정일은 단둥에 아주 깊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그전에 단둥시 지도자인 왕원첸(王文謙)이 신의주와 평양을 방문할때 김정일 위원장이 친히 접견해주셨지요.
단둥시 당과 정부의 대표단에 크게 배려해주어 방문이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2001년1월 김정일 동지가 중국을 방문할 때 상하이와 베이징을 돌고 귀로에 단둥역에서 20여 분 머물렀는데 랴오닝성위 부서기 장청샹과 저 그리고 장줘융 시장을 열차로 초청하여 친절하고도 우호적인 환담을 하였습니다.그때 저는 처음으로 조선의 지도자를 만나 뵌 것이었습니다.그 분은 농업문제에 아주 큰 관심을 보이며 우리 단둥의 농작물 생산량,품종,화학비료,온실하우스,도시건설,고속도로 등등을 소상히 물어보셨습니다.김정일윈원장은 차안이 따뜻하여 셔츠 하나만 입고 계셨는데 떠날 시간이 되어 우리가 작별을 고하자 기어코 차 문 앞까지 전송해주셨습니다.그는 영하 20도의 찬바람을 무릅쓰고 차 아래 솜옷을 입은 중국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차이톄푸씨는 원래 랴오닝성위 조직부 부부장이었다.2002년 11월 20일 단둥시로 전근되어 단둥시의 서기가 되었다.비록 길지 않는 시간이지만 단둥시에 대한 감정이 아주 깊었다.그의 말을 빈다면 ‘발전 잠재력이 아주 큰 단둥 이 땅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차이씨는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하면 단둥의 미래가 어떻게 될것 같습니까?”라고 했던 나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새 세기에 단둥은 일거에 도약하는 방식의 발전을 해야 하는데 외부의 견인없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단둥은 대외개방적인 외향성 경제로 나아가는 발전전략을 써야 합니다.이는 단둥 경제 진흥의 필수적인 길입니다.단둥시의 인민들은 모든 힘을 다 기울여 외국의 사업가와 자본을 유치해야 한다는데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였씁니다.”
필자가 단둥빈관에서 만난 단둥시장과 비서실장,오른쪽은 단둥시장 장줘융,왼쪽은 단둥시 정부 비서실장 쑤융성
“단둥은 개방해야만 비로소 지리적 우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우리는 조선,일본,한국,러시아와 모두 가깝습니다.작년 조선과의 무역액은 2억 달러였습니다.(수입 3천만 달러,수출 1억7천만 달러)그밖에도 소규모 무역과 변경 보상무역이 있는데 모두 해마다 확대되고 있습니다.”
“신의주를 특구로 하면 우리에겐 아주 다행스러운 기회가 되지요.우리의 개방을 더욱 가속화하게 할 테니까요. 그 곳의 물류,정보는 단둥에도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그것들은 단둥과 랴오닝성의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전국이 경제발전에도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장줘융 단둥시장한테 신의주 특구 건설이 단둥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신의주가 개방되어야만 단둥시가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방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단둥은 변두리 지역의 변경도시입니다.조선이 그냥 닫혀 있으면 단둥의 연강,연변 우세가 사실 다 열세로 되어 버립니다.일단 맞은편이 개방을 하면 이 열세는 즉시 우세가 되는 거지요.그래야 연강의 우세인 압록강의 자원도 개발될 수 있고 연해의 우세인 95킬로미터 해안선을 이용하여 대외개방의 힘이 커질 수 있습니다.또 연변의 우세는 신의주가 닫혀진 상태에 있어 공항,부두,고속도로 등 기반시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신의주가 개방된다면 단둥의 지위가 상승될 것입니다.단둥의 경제에도 하나의 큰 추진이 돌 것이고요.우선 신의주는 건설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겠습니까.단둥의 118개 건설회사와 작업대들이 인력과 원자재 등 물자를 모두 단둥지역에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숙박과 각종 시설 ,공사장 진업,운수 등의 비용에서 상대적 경쟁력이 생기는 것입니다.건축자재와 철강재,목재,시멘트,전기기계,심지어 벽돌과 기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둥에서 수입해야 합니다.단둥은 자체적인 생산과 화물수송 등이 모두 편리하지만 북한은 이런 물류가 없습니다.단둥은 신의주의 후방공급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신의주에 만약 특구를 설치하면 단둥 사람들의 사상의식도 크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이전에도 단둥은 대외개방도시로 발전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말뿐이었습니다.신의주 특구를 설립한다면 단둥은 단숨에 대외개방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국제시장과 지견하게 될 것이며,외국의 금융자본 및 정보와 직접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의주는 북한의 경공업 도시이지만 세 개의 제지공장 (신의주제지공장,조선제지공장,만선제지공장)과 의류가공공장 밖에는 별로 중요한 공업시설이 없다.특히 기초공업 이를테면 대형 발전소가 없고 급수와 통신시설이 빈약하여 전력이 풍족하지 못하고 외부세계와 연계할 통신망이 없다.심지어 압록강빌딩이라는 외국인 호텔 외에는 호텔도 오락장소도 없어 투자나 건설인력 및 관광객들이 가더라도 당장 먹고 잘 곳도 없다.한마디로 모두 새로 건설해야 할 형편이다.
일단 20만 내지 30만명의 사람들이 밀려들면 어디서 자고 먹고 하겠는가?그러니 건설 초기에는 모두 단둥에 머무는 수밖에 없다.국내의 사업가들이 단둥에 발을 붙이고 사무소를 세우고 회사를 만들고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을 단둥이 다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장줘융 시장은 단둥시는 중앙정부와 성정부가 지시만 내리면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하면서 사회치안,상공관리,세무,교총,거주 등에 모두 대응할 능력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특구 설치가 공식 발표되기만 하면 수많은 사업가가 모여들 것입니다,외국 사업가들이 회사를 차릴 경우 정상적인 수속은 이틀안에 다 해줄 것이며 필요시 한나절 안에도 다 해줄 수 있습니다.우리는 가장 편리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카페리는 매일 수만 명의 인력을 대안으로 수송해줄 것입니다.단둥에서 신의주 특구로 출퇴근하게 되면 그 곳의 주택과 용수,전기,쇼핑시설 등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게 될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단둥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덩바오췐(鄧寶權)부시장,취런뎬(曲仁田)부시장,수융성
(蘇永勝)비서실장,단둥 대외경제무역국장 한수윈(韓淑雲)여사,단둥시 해양어업국장 승웨징(宋悅景),민영기업가 왕청구이(王成貴),자오원스(趙文詩)등을 취재하였다.그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신의주 특구 설립에 관해 들은 바있다고 하며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수윈 대외경제무역국장은 북한과의 무역을 소개하면서 단둥시 수출무역은 1997년부터 줄곧 랴오닝성의 3위를 기록중인데,2001년 수출액 7억 7861만 달러 가운데 대북한 수출액은 1억7080만 달러로 전해보다 10% 성장하였다고 밝혔다.
한국장에 의하면 대북한 수출은 주로 식량,식용유,식품,의류,원단,생필품,농산물,
종자,화학비료,농업용 비닐 박막 등이다.최근 북한경제가 다소 회복세를 보여 이전에는 흑백 텔레비전을 수출했으나 지금은 칼라텔레비전,냉장고,세탁기.전기밥솔 등 가전제품도 수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는 인테리어 자재와 사무실용품 및 아동식품 등의 수출도 점차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신의주는 어떤 모습인가? 그 곳에 특구를 설치하면 앞으로 단둥의 대외무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다년간 대북한무역에 종사한 한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금년 5월 우리는 나진 선봉에 갔었습니다.그 곳의 약점이 여러 면으로 나타났는데 우선은 교통여건이 안 좋은 것입니다.
2002년5월,단둥빈관에서 필자와 단둥시 대외경제무역국 국장 한수원 여사
중국의 훈춘시와 조선의 통상 항구가 5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거기에서 나진 선봉까지는 다시 40여 킬로미터를 더 가야 합니다.교통이 아주 불편한 거죠.다음은 나진 선봉의 유치대상이 주로 중국 사업가인데,중국 사람들의 대 북한무역은 주로 싼 제품들입니다.조선의 구매력이 약하기 때문이지요,홍콩과 마카오의 사업가가 그 곳에 20여 층이英皇大酒店이라는 호텔을 지었는데 주로 중국인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거기서 소비를 합니다.평시에는 투숙객이 별로 많지 않고 주말에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 그 곳에 가서 소비를 하는데 이틀 묵고는 돌아들 갑니다.하지만 신의주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훈춘이 아닌 단동입니다.
단동의 장점은 교통이 편리한 것입니다.중조 무역에선 오로지 단둥만이 하늘의 혜택을 받은 곳이다.압록강대교가 신의주로 직통하여 철도나 도로로 다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단둥에는 대조선 통상구가 13개나 도며,그 가운데 대동.낭두도(浪頭島)는 일급 통상구입니다.”
특구 이름은 ‘장군님이 짓는다!’
2002년 5월 17일,앞당겨 네덜란드촌에 도착한 양빈 대표단 성원들은 북한 대표단을 영접해 제3차 회담을 할 준비를 하였다.
(공식 회담은 3월에 북한 대표단이 처음 네덜란드촌을 방문하였을 때가 제1차.4월22일부터 4월 28일까지 양빈 대표단의 평양방문이 제2차였다.5월18일부터 25일까지의 회담은 제3차가 된다)
5월 18일 오후 1시 정각,북한 대표단은 평양으로부터 비행기편으로 선양 도선(桃仙)공항에 도착하였다.김동규 등 14명이 변방 검사소를 거쳐 걸어 나올 때 유라시아회사의 조선족 복장을 입은 두 여성이 나아가 귀빈들에게 생화를 안겨주며 환영을 표했다.
양빈은 리강 ,스쥔,볜세우저,저우샹과 중국 대표단(양빈 대표단을 지칭)전원을 이끌고 공항 홀에 이러러 영접하였다.
오후 2시,우리의 긴 승용차 대열이 네덜란드촌에 도착하였다.유라시아그룹의 많은 종업원들이 손에 작은 북한국기와 생화를 들고 정문으로부터 사무청사에 이르는 구간에 양쪽에 늘어서서 대표단을 환영하였다.북한 대표단은 별장에 안내되어 잠시 휴식을 하였다.그들이 든 6개 별장의 객실에는 이미 생화 ,과일,사탕,술과 쥬스 등이 놓여 있었다.양빈은 접대사무실 주임 저우샹에게 북한 대표단의 접대 수준은 우리가 평양 모란봉국빈관에서 받은 수준을 초월하여야 하며,손님들이 제집에 온 기분을 가지게 하여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5월19일 오전 9시 30분,회담은 네덜란드촌의 암스테르담 기차역 3층 대청에서 진행되었다.양빈 대표단의 성원은 15명이었고 북한측에 대한 공식호칭은 ‘신의주 특별행정구 개발건설 지도소조’였다.
대표단 명단을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 아래와 같다.
양빈(楊斌)조장
마닝(馬寧)부조장
리강(李剛)부조장
리잉저우(黎瀛洲)부조장
왕스푸(王時福)기획고문
둥롄파(佟連發)법률조 조장
뤄웨이젠(駱偉健)고급 법률고문
양다융(楊大勇)법률고문
추이양(崔揚)법률고문
리쑤(李肅)고급 정책고문
저우팡성(周放生)고급고문
왕 뤄(王諾)항구고문
왕후이동(王惠東)고급고문
웡융시(翁永曦)고급고문
차오성리(喬勝利)고급고문
이 명단은 양빈이 직접 관여하여 작성하고 프린트한 것이다.나는 후에 양빈의 통고를 받고 회담에 참석하여서 후보로 고문이 된셈이다.
아래의 북한 대표단의 명단도 양빈이 제공한 것이다.
북한측 대표단의 성원 총 14명을 순서에 따라 아래와 같이 적는다.
김동규(金東奎) 평양원예총회사 사장
계승해(桂勝海)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부위원장
허명규(許明奎)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법률담당 부위원장
이수길(李秀吉)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고문
안기우(安基宇)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부위원장
김명철(金明哲)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국장
이덕송(李德松)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고문국장
김광혁(金光革)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부국장
박성호(朴成浩)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통역
한선생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통역
19일의 회담은 주로 신의주 구역명칭에 집중되었다.이는 사실상 양측이 가장 골머리가 아프면서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의제였다.특히 양빈 대표단은 국제사회가 접수할 수 있게 하고 신의주 특구에 외자유치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특별행정구’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회담은 양측 수석대표의 대화로 시작되었다.
“오늘 회담의 의제가 어떤 것들입니까?귀측이 먼저 신의주 구역명칭을 말씀해보시지요. 가급적이면 이 문제를 조속히 결정하도록 합시다.앞서 평양에서 귀측이 제출한 특별행정구란 명칭에 대해서 우리가 연구한 후 최고회의에 보고하였습니다.우리는 양빈 총재님에게 삼권이 있다고 인정하는데 구역명칭을 신의주 특구라고 제안할 수 없겠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구역명칭을 여전히 신의주 특별행정구로 할 것을 주장합니다.완전히 외자유치를 위한 목적입니다.”
양빈의 이런 대답에 김사장은 이렇게 해석했다.
“명의상은 특구지만 사실상,또 내용상은 특별행정구인 것입니다.”
이 말은 응당 북한 대표단이 처음으로 특구의 내용 즉 양빈대표단이 제기한 ‘삼권’의 정치구조에 동의함을 명확히 시사한 말이라고 봐야 한다.
둥롄파 교수가 즉시 법률적 엄밀성과 표현의 측면에서 해석을 가했다.
“행정관리권,입법권과 사법권을 가지면 그것은 사실상 특별행정구인 것입니다.이 명칭은 삼권과 함께 매어져 있는 것입니다.특별행정구 하면 듣고 대번에 알게 됩니다.그러나 ‘특구’라고 하면 그 의미가 명석치 않고 삼권의 의미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북한 대표단에서 특히 ‘기본법’담판에서 주역을 맡았던 법률전문가가 있는데 북한 대표단 명단 중에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법률담당 부위원장’으로 적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허 부위원장’으로 호칭하여 왔다,
북한측에 대표들이 잇따라 구역명칭을 ‘특구’로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그러나 양빈측 대표들은 ‘특구’명칭에 동의하지 않았다.양빈이 말머리를 슬쩍 다른 데로 돌렸다.
“우리는 한집안 사람끼리 의견을 나누는 것이니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든 그대로 다 내놓아 보십시요.그래야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유보하는데 도움이 돌 것 아니곘습니까.저는 후반생을 모두 조선인민에게 바치고자 합니다.저는 늘 대표단에게 조선인민의 민족적 감정을 존중하라고 합니다.나는 우리가 신의주 특구를 하는 것은 바로 신의주와 조선이 쾌속 발전을 이룩하기 위함이란 것을 알리고자 합니다.”
양빈은 자기 곁의 ‘중국측 대표’들을 가리키며 김사장 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분들은 미래 특구의 임원으로 선출될 사람들입니다.마닝씨는 제가 네덜란드에 있을 떄에 사귄 친구이고 경제학박사인데 저와 함께 사업하려고 외국의 회사를 다 버렸습니다.왕후이둥씨 역시 미국 통신회사의 수석대표 직무를 버리고 특구에 몸을 바치려고 합니다.뤄교수님은 마카오대학 법학원 교수입니다.중국 마카오사의 사장도 했던 분입니다.관선생님은 작가이시며 아주 저명한 언론인입니다.조선인민을 홍보하려고 왔습니다.
왼쪽으로부터 뤄웨이젠 교수,양빈의 수석 비서로 임명된 웡융시,랴오닝 법학원 부원장 둥롄파.
웡선생님은 저의 좋은 벗입니다.중국의 개혁개방에서 이 분은 초창기에 조사연구와 서류작성에 참여하였다가 나중에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웡선생님은 조선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이 분이 참여하면 신의주 특구가 중국의 개혁개방이 걸었던 굽은 길을 겆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둥교수님은 랴오닝대학의 법학원 원장으로 저명한 국제법 및 경제법 전문가십니다.
왕뤄 원장님은 도시와 항구 설계 전문가십니다.신의주의 기획과 설계에 참여하실 것입니다.이 분들은 모두 중국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서양에서도 교육을 받은 전문가이며 학자형의 인재들입니다.그리고 차오성리씨는 선전 사구(蛇口)특구 건설이 일인자인데 며칠 지나면 오실 것입니다.우리의 임원은 60% 이상이 박사이고 40%는 석사인데 모두 저와 함께 자신의 일체를 조선인민에게 바치려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같은 점을 찾고 다른 점을 유보’하려고 합니다.더 번복하지 맙시다.저는 조선인민의 아들이며 김장군의 아들입니다.장군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할 것입니다.우리는 조선인민의 감정을 존중합니다.
“관건은 어떻게 외국자본을 신의주로 들어오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외국상인이 호텔에 든 손님이라고 할때 반드시 우리가 만든 음식이 그들의 구미에 맞게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도리입니다. ‘기본법’은 바로 호텔 식당의 메뉴와 같은 것이고 신의주는 호텔 식당과 같은 것입니다.전세계 자본이 다 이 식당으로 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동규 사장은 양빈의 말을 이렇게 받았다.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가 중요하지 식당 이름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양선생님이 명칭에 특별히 민감한데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특구’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삼권’이 있지 않습니까.양선생님은 특구의 행정장관이니 그 권력은 장관급의 권력보다 더 큽니다.부총리도 삼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조선은 저에게 부총리급 노임을 줄 겁니까?”
양빈이 웃으며 하는 말에 양측 대표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허명규 부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양빈 총재께서 특구와 특구행정구 장관을 맡아주시길 고집하고 싶습니다.홍콩의 둥젠화 선생이 구 수반이 되었지만 2기밖에 연임하지 못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양 총재님에게 50년을 맡깁니다.둥젠화선생님은 아마 입법회의를 소집하지 못하겠지요?”
양빈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여러분 잠깐 휴식을 합시다”라고 제의하였다.
잠시 휴식하는 사이 사람들은 휴게실과 2층 바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였다.양빈과 김사장은 휴식시간에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휴식 후 양빈은 회담 전략을 바꾸어 문제를 상부로 올려 보내는 방식을 구사했다.신의주 특구의 구역명칭을 김정일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양빈이 첫 발언을 헀다.
“저도 어떻게 해야 조선인민의 감정을 존중할 것인가 생각하고 있고 또 조선측이 홍콩,마카오 와 같은 특별행정구란 명칭을 접수하기 힘들어 하는 점도 고려하고 있는데.이에 대해 저는 세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첫쨰,조선인민을 존중하고 조선역사를 그들의 민족감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둘쨰,특구는 김정일 장군이 창립한 것이고 세상에 있어 보지 못한 것입니다.바로 이전에 덩샤오핑이 선전특구를 창립하고 개방개혁을 추진하여 ‘뉴스위크’의 표지인물이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당시 그것은 중국에도 있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셋째,투자자의 접수 능력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신의주 특구를 잘 꾸리고 신의주가 세상에서 가장 환영받는 이상적인 투자지역으로 되게 하려면 반드시 투자자들의 이익과 그들이 받아들일수 있는 조건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보건대 신의주 특별 관할구라고 하면 될것 같습니다.세상에 아직 이런 명칭이 없고 또 중국의 홍콩,마카오와도 같지 않으며 외국의 투자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김동규가 말하였다.
“홍콩에 하나의 행정권 밖에 없는데 양총재에겐 세 가지 권력이 있습니다.구역의 존엄과 기구를 생각하여 양총재가 또 하나의 명칭을 제기하였는데,우리 거수로 가결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김장군의 의사이십니까?그렇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빈의 물음에 김사장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아,아니,그런것이 아니고 이건 우리가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장군님이 결정한 것이라면 더 상의할 것 없이 그대로 집행합시다.”
양빈의 이런 표시에 모두들 박수를 쳤다.
양빈은 “김장군님이 결재하시게 합시다.” 라고 한 마디 더 하였다.박수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북한 대표단은 양빈이 특구장관이 되는데 동의하고 삼권까지 부여하면서 특별행정구 명칭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대표는 일찍 “다른 사람이 썼던 명칭은 쓰고 싶지 않다”,”그런 명칭은 낡아 빠졌다”.”식민지 색채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그런 이유들에서 우리는 북한 관리들의 관념과 고충을 엿볼 수 있었다.
북한이 줄곧 신봉해온 것은 ‘주체사상’으로 김일성이 건재할 때 혁명과 건설에서 신봉해 온 지도이론으로서 중국으로 말하면 ‘마도쩌둥 사상’과 같은 것이다.그런데 특별행정구는 중국식 ‘일국양제’에 의한 창조물로서 홍콩과 마카오에 적합한 것이다.
강렬한 민족적 자부심에 젖어 있는 데다 장기간 주체사상이 교양을 받은 북한 관리들은 최고 당국과 김정일의 지시가 없느면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사상’과 ‘경험’을 승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그들이 국제관행에 따르기 극히 힘든 이유의 하나이다.다음으로는 북한이 2002년6월이전에는 북한 노동당과 중앙정부가 한번도 ‘개혁’을 운운하지 않았던데다 7월22일부터 외환과 바꾸어 쓰는 태환권 사용과 배급제를 페기하고,임금수준을 높이고,시민들이 임금에 의해 생활하게 하며,외환제도를 개혁하여 대외무역을 활성화시키고,임금과 물가개혁을 하더라도 북한은 이론상의 대대적인 선전이나 토론을 한 적이 없고 다만 ‘경제 활성화’와 ‘경제발전’이란 슬로건 아래 추진했을 뿐이다.이로 미루어 북한측 대표가 홍콩과 마카오의 ‘특별행정구’란 이름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가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하물며 이 구역명칭 논쟁도 2002년7월 북한이 경제개혁을 실시하기 이전에 발생한 것임에랴.
그러나 양빈 대표단은 그렇지 않았다.그들이 특별행정구 명칭을 고집하는 것은 단지 양빈 특구수반의 지위를 확립(특구수반은 김정일이 임명)하기 위한 것에 앞서 ‘신의주 특별행정구’는 ‘홍콩특별행정구’와 같이 일국양제를 실시할 뿐만 아니라,삼권을 부여하여 홍콩을 초월한다는 점을 전세계에 알리자는 데 있다.
여기서 일국양제란 북한은 사회주의 제도를 실시하고 신의주는 자본주의제도를 실시함을 말한다.특수한 점은 ‘고도의 자치를 하고 행정관리권,입법권,독립적 사법권과 종심권을 향유’,’지위와 제도의 50년 간 불변’,’법에 의한 사유재산 보호’,’거주민의 법률 앞에서는 평등’(국적,혈통,종족,성별,언어,종교,정치 혹은 사상 신앙,교육정도,경제상황 또는 사회적 여건으로 인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다)이다.
결국 외국기업과 자본에서 이곳은 북한의 다른 지역과 달리 ‘ 자본주의 제도’를 실시하고 삼권이 부여되어 있는 ‘특별행정구’란 점을 일목요연하게 알리기 위함이다.구역의 명칭은 바로 ‘금빛 간판’인 것이고 ‘기본법’과 더 불어 찬연히 빛날 것이다.
양측은 구역의 명칭을 두고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2002년3월말 북한 대표단이 선양에 와서 1차 회담을 하기 시작해서 부터 양빈 대표단이 평양에 가서 진행한 제2차 회담,그리고 북한 대표단이 두번째로 네덜란드촌을 방문한 5월 중순이 마지막 하루까지 근 2개월에 걸쳐 논쟁을 해왔지만,여전히 서로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던 구역명칭 협상은 양빈의 “장군님께서 결재하시게 합시다”하는 한 마디로 매듭을 지었다.북한 대표단 성원들도 누구 하나 명확하게 ‘거절’하거나 ‘환영’하는 태도를 밝힐 수 없어 귀국 후 최고당국자에게 보고하기로 하였다.
당시 우리는 김정일이 ‘신의주 특별행정구’명칭에 동의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김정일은 일찍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삼권’과 ‘영주권’에 대한 논장
구역명칭에 대한 논쟁이 “장군님께서 결재하시게 합시다”라고 마무리하자 양측은 모두 힘든 고비를 넘긴 감각이어서 회의분의기가 금방 홀가분해졌다.
북한측 수석대표 김동규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회담을 끌어나갔다.
“양빈 씨가 특구장관이 돼 행정,입법,법원을 관장하십시오.”
솔직한 성격의 양빈은 이미 ‘지역명칭’에 나름대로의 파악이 있었던지 실눈을 지어 웃으며 북한 대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도 사실은 저를 위하여 그러시는 것이지요.김사장님은 기본법에 다른 의견이 없으십니까?”
“삼권을 다시 논해 봅시다. 특구장관은 행정부,입법회의,법원을 책임집니다.특구장관은 조선 최고회의로부터 임명을 받고 중앙정부에 선서해야 합니다.입법회의는 특구의 관련 법률과 법규를 제정합니다.입법회의 의장,법원장,검찰장,경찰국장은 중앙정부의 추천과 특구장관의 지명 및 입법회의 선거를 거쳐 확정됩니다.입법회의는 몇 명의 입법의원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15명이면 어떨까요?중앙이 5명을 임명하고 특구장관이 5명을 임명하고 지역주민이 5명을 선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북한측 박성호의 통역을 들으며 나는 “입법회의 의장,법원장,검찰장,경찰국장은 중앙정부의 추천과 특구장관의 지명,입법회의 선거를 거쳐 선정됩니다”라는 대목에서 그 4개의 중요한 직위는 북한측이 선정하고 파견하곘다는 의도를 명백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빈 대표단 성원들은 내부논의시 이 네 요직은 모두 외국인이 맡고 북한측은 차석에 앉는 것이 좋다고 의견을 모았었다.그들에게는 북한인이 입법회의 의장,검찰장,법원장,경창국장이 되면 많은 투자자들이 겁에 질려 신의주 특구로 올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고.최소한 서방의 대 투자자들이 절대로 수천만 내지 수억 달러를 신의주에 투지하지 않으리란 점이 커다란 우려였다.양빈은 특구장관 이외의 요직에 모두 북한사람이 앉으면 북한 본토와 아무런 차별이 없게 되는 것이며.’특구가 특별치 않고’,’국제적 성격이 없게’ 되면 외자유치가 실패로 돌아가게 될 일이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빈은 우리와의 내부 모임에서 의장과 대법관(법원장)은 유럽인이 가장 적임일 것이라며,공장한 법집행으로 명성이 높은 네덜란드 대법관이나 국제 대법정에서 은퇴한 저명한 법률전문가를 선임하면 좋을 것이고,경찰국장은 서방 법률을 숙지하고 아시아 각국의 법률에도 능통하며 경험이 많아 분쟁을 야기시키지 않을 싱가포르나 홍콩 인사가 적임이라고 하였었다.
양빈의 이런 생각은 사실 하나의 참신한 신의주 특구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당시 양빈은 네 요직에 어떤 인물을 기용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내정한 바가 없었고,양빈 대표단의 어느 누구도 요직 인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그들은 사적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북한측은 입법회의 성원을 15명으로 제안하면서 북한측과 양빈이 각각 5명씩 지명하고 지역주민이 5명을 선거로 뽑자고 하였다.따라서 현지 주민이 선거하는 5명이 입법회의 의원 비례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제1차 입법회의를 소집할 떄는 아직 거주권을 지닌 외국인이 없을 때이므로 현지 주민은 모두 북한사람을 입법의원으로 뽑게 될 것이다.다시 말해 입법회의엔 북한사람이 10명이나 되고,양빈측은 단 5명 밖에 없게 된다.’사회주의의 법제’에 습관된 10명의 북한 의원은 서방식 법률의 실시를 주장하는 양빈측 5명 의원에게는 압도적인 다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가 ‘자본주의 ‘법칙에 적용되는 법률이나 법규를 통과시키는 일이 순조로울 수가 없고 또 보장될 수도 없는것이다.의회는 아마도 매일 한두 가지의 조항을 놓고도 끝없는 논쟁으로 시간만 허송하고 말 것이다.그에 반해 신의주 특구 설립 초기에는 십여 개 심지어는 수십 개의 법률과 법규를 제정하여야 한다.
때문에 ’기본법’의 관철과 실시를 담보할 수 있는 입법의원이 다수를 점해야 한다
양빈의 수석 법률고문 둥롄파 교수는 머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다.그는 북한 대표의 말을 받아 토론하지 않고 중대한 인사 결정과 관련되는 문제는 수석대표 양빈의 말을 들어보자고 하면서 ‘현지주민 5명을 선거’하는 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제1차 입법회의에서 현지주민이 선거하는 정원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입니까? 특구정부 설립 초기엔 외국인이 영주권을 가지지 못하는데 그럼 외국인의 권한은 어떻게 합니까?”
이때 양빈이 그 말꼬리를 이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응당 투자자들의 몫이 있어야 합니다.의회에 반드시 그들의 이익 대표자가 있어야 하지요.이렇게 합시다.장관이 3명 지명하고 조선측이 2명 지명합시다.이렇게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허명규 대표가 다른 의견을 말했다.
“25만 조선 영주민에게 2명뿐이란 건 너무 적습니다.조선측이 3명 ,장관이 2명 지명하도록 합시다.”
양빈이 한발 물러서고 이렇게 대답했다.
“좋습니다.일단은 큰 틀을 이렇게 짜놓고 봅시다.”
입법회의 의원 구성 비율은 이렇게 돌파구가 마련되었고,결국은 북한측이 8명,양빈측이 7명으로 되도록 했다.’우리측’대표들은 서로 얼굴만 쳐댜 볼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양빈이 “일단은 큰 틀을 이렇게 짜놓고 봅시다”라고 한 데서 그들은 필시 ‘후에 다른 기회가 있을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삼권’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북한측 대표는 기본법 제정순서에 관련해 말을 했다.
“입법회의 권한에 관한 문제인데요.특구의 관련 법률과 법규의 제정은 중앙정부에 보고하여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둥롄파 교수가 비교적 상세하게 해석하고 천명했다.
“신의주 특구는 입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입법기관이 제정하는 법률은 중앙정부나 최고권력기구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신의주 특구의 법률은 행정장관이 서명해 효력을 발생시킨 후,중앙정부나 최고입법기관에 신고하면 그뿐입니다.신고는 그 법률의 효력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허명규는 견해를 좀 달리 하였다.
“입법회의에서 통과된 법률은 최고입법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최고입법기관은 신고되어 올라온 결의에 대하여 접수하거나 되돌려 보내 수정할 것을 요구할 권한이 있습니다,”
“물론이지요.”
양빈이 이렇게 대꾸를 하니 둥롄파는 다음 내용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주 특구는 신의주에 맞는 민사법,형사법,절차법,행정법 등 여러 가지 법률규범을 제정할 권한이 있습니다.특구는 자체적으로 입법하여 외국의 정치적 조직이나 단체가 신의주 특구에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양측 대표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입법회의 직능과 의원 정원에 대한 토론은 끝내 의장 인선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대표단이 선양 네덜란드촌에서의 상담,왼쪽으로부터 마닝,김동규,양빈
양빈이 먼저 이 문제를 꺼냈다,
“특구의 국제적 특성을 봐서 의장과 법원장은 외국인,특히 변호사 경험을 지닌 사람을 선임할 것을 희망합니다.의장은 네덜란드 사람이 어떻습니까?예를 들면 국제법 경력자 말입니다.부의장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사람 한 명과 조선측 한 명으로 하면 될것 같습니다.특구에 투자하는 외국 투자자들은 주로 법률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봅니다.때문에 저는 입법회의 인선을 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두고 고려한 것입니다.이 점에서 저는 사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저는 절대 중국에 있는 저의 친인척이나 동창들 한 사람도 특구에 취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사법의 공정성과 행정의 청렴성을 담보할 것입니다.”
김동규가 “우리는 돌아가서 양종재님의 뜻을 보고하겠습니다.다음 문제를 말해봅시다”라고 하니 허명규가 “특구 행정장관의 직능과 권리입니다”라고 하였다.
둥롄파가 화제를 받았다.
“특구 행정장관은 특구를 대표한다.기본법이 규정에 준하여 중앙과 신의주 특구를 책임지게 된다.특구 행정장관은 아래와 같은 직능을 행사하게 된다.
1. 신의주 특구를 지도한다
2. 기본법의 이행과 특구의 기타 법률 및 법규의 이행을 책임진다.
3. 법안에 서명하고 법률을 선포한다.
4.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명령을 선포한다.
5. 각급 정부 관원을 임명.파면한다.
6. 특구 정부를 대표하여 중앙이 수여한 권리에 따라 대외 사무를 취급한다
7. 형사범죄자들에 대한 형벌을 사면하거나 감형해준다
8. 특구 정부를 대표해 관련문서에 서명한다.
9. 특구와 관련되는 기타 사무를 처리한다.
허명규가 물었다.
“삼권에 다른 문제가 없습니까?”
양빈은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누구도 이의를 제거하는 사람이 없으니 “없습니다”라고 시원하게 대답하였다.
마닝이 질문했다.
“특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현지 거주민으로 인정합니까?몇년을 거주해야 영주권을 가질 수 있습니까?”
허명규의 대답은 이러했다. “홍콩은 7년이고 신의주 특구는 10년입니다.”
“10년이면 너무 길지 않습니까?”이렇게 되묻는 마닝이 빙긋이 웃었다.
홍콩기본법과 마카오기본법 제정과 토론에 참여하였던 중국 정부관리 출신의 뤄웨이젠 교수는 관련내용을 상당히 숙지하고 있었다.양빈이 그에게 말을 권했다.
“이 문제는 교수님이 말씀해야 하겠습니다.”
뤄웨이젠은 이렇게 해석했다. “원칙상 국적에 따라 구분하지 않습니다.외국사람은 10년 지나야 거주권을 주고 조선사람은 기한이 없다면 역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양빈이 견해는 이러했다. “지금 외국인이 아직 입주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제한부터 한다면 매우 현명하지 못한 것입니다.기본법엔 외국인에 대한 제한규정을 넣어서는 안됩니다.외국인은 사실 많이 올수록 좋은 것입니다.그들은 자금을 가지고 오는 투자이민인 것입니다.”
허명규가 한마디 거들었다. “외국 투자이민과 기술이민도 일정한 비례가 있어야 합니다.”
“신의주의 25만 명 거주민이 영주권을 가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요는 특구에 오는 투자자이민과 기술이민들의 거주에 먼저 어떤 규제를 하지 말고 발전상황을 보아가며 결정하는 것입니다.”
양빈의 말에 김사장은 찬성을 표했다.
“그렇게 합시다.신의주 특구에 외국인들이 얼마나 올지 아직 미지수입니다.법률적으로 규제를 하지 말고 우선 휼륭한 투자환경을 조성하여 외국인들이 많이 온 다음에 결정합시다.”
뤄웨이젠이 자신의 견해를 폈다. “조선인가 외국인의 거주권 비율은 먼저 정할 필요가 없고 법적으로 제한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그러나 영구 거주민이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영주민이 될수 있느냐는 반드시 명백한 법률규정을 해야 합니다.
이는 특구에 사는 사람,장차 특구에 오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인데 한 부류는 거주민으로서 기왕에 신의주에서 거주한 25만의 조선사람과 미래의 정부가 허가한 사람들이고,다른 한 부류는 비거주민입니다.비거주민은 아래의 몇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1)특구건설에 참여하는 노동자입니다. 이 부류 사람들은 조선인이든 중국인이든 기타 외국인이든 불문합니다.
(2)특구에서 사업하는 직원,기술자입니다.역시 어느 나라 사람이든 불문합니다.
(3)중앙 연락사무소와 특구주재 기구 및 정부 파견요원 역시 현지의 거주민이 아닙니다.
(4)관광객,불법 체류자.친척방문자등 법적 허가없이 체류하는 사람들은 그 체류기간이 10년을 넘더라도 영주민이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특구 정부와 법률의 인가를 받은 사람만이 비로소 영주민이 될수 있습니다.정부는 서류 다른 부류와 상황을 가려서 인가(認可)해야 합니다.특구는 앞으 로 거주민법,이민법을 제정하여 법률로 한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김사장이 찬성을 하였다. “좋습니다.특구가 관련 법률을 제정하게 합시다.”
‘영주민’에 대한 토론은 여기서 일단락을 지었다.회의가 끝난후 우리는 뤄교수에게 농담을 던졌다. “오늘 교수님이 우리들에게 강의를 하셨습니다그려.”
첫날 담판은 순조롭게 진행된 편이다.’구역명칭’은 김정일이 결재하게 하였고 ,’삼권’의 의미 규정도 큰 줄다리기 없이 마무리되었다.제3차 담판은 스타트가 좋은 셈이다.
그 날,양빈은 심기가 무척 좋았다.저녁에 양빈은 네덜란드촌 ‘백조의 호수’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열대 우림홀 안은 등불로 휘황찬란했다.양측 대표들은 서로 술을 권하며 축복의 말들을 나누었다.연회에 초청된 연예인들이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연회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연석이 파한 후는 특이하게 기획된 불꽃놀이 야회가 진행되었다.
‘백조이 호수가’밤하늘에 오색찬연한 불꽃이 휘날렸다.어떤 불덩이는 공중에 높이 날아 올랐다가는 다시 터져 작은 불꽃으로 부셔져 내렸다.병풍모양의 꼬리를 편 공작새를 방불케 하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이 떄 양빈이 한마디 외치니 홀연 호수 맞은편에 한글로 김정일에 대한 불꽃 자막이 나타났다.그 불꽃 자막은 밤하늘에 오래도록 지지 않고 빛을 뿌렸다.북한 대표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양빈이 이런 기발한 구상을 할 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그렇게 짧은 시일에 양빈은 어디서 이렇게 많은 불꽃을 피울 사람들을 불러왔을까?
기본법의 조속한 선포를 희망한 양빈
5월20일오전 9시30분,양측 대표는 회의장에 입장하였다.좌석에 앉아 북한 수석대표 김사장이 먼저 벙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양총재님 엊저녁 불꽃놀이 야회에 감사드립니다.우리는 불꽃자막이 나타날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북한 대표들이 뜨거운 박수로 양빈과 우리측 대표단에 사의를 표했다.
“특구의 명칭에 대하여 투자자들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습니다.엊저녁 야회 후에 숱한 투자자들이 저를 찾아와 특별행정구라는 명칭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단둥 쪽에서도 그런 의견 제시가 있었습니다.단둥과 신의주는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서 또 상호보안의 관계입니다.만약 신의주가 단지 특구에 불과하면 변방무역 밖에 될 것이 없으며 다른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신의주가 일단 특별행정구가 되면 그 쪽도 대응하는 특별한 정책을 만들어 인력,물자,전력과 교통,나아가서는 통관 등 영역에서도 특별취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특구의 명칭은 김장군님의 결재를 존중하겠습니다.만약 김장군님이 결재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신의주 특별행정구’라고 명명하기를 희망합니다.”
양빈이 단둥 사람들의 성원을 곁들여 설명한 자신의 소원과 의도는 마침내 상대방을 감동시켰다.김사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양총재님의 의사를 위에 보고하겠습니다.”
허 부위원장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특구가 경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습니까?”
뤄웨이젠이 대답하였다. “국가 단위로 가입을 요구하지 않는 국제기구는 가입할 수 있습니다.이를 테면 위생,문화,체육,경제 등 기구입니다.참가하면 특구엔 유익한 것이지요.”
“관련 국제기구들이 우리의 가입을 동의하겠습니까?”허명규가 다시 묻자 뤄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특구 건설이 잘 되고 특구의 법제가 국제규범과 일치되면 그들이 우리의 가입을 요청할 것으로 믿습니다.물론 반대하는 국가도 있을것이므로 일정한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양빈이 한 마디 덧붙혔다. “신의주 특구를 설립한다는 건 사실 10중의 9가 정치이고 1이 경제입니다.중요한건 정치입니다.그러므로 중국,미국 ,일본,유럽과 기타 나라들의 태도가 다 같지는 않을 겁니다.”
이에 대한 김사장의 견해는 이러했다.
“중국은 특구 건설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중조의 관계는 피로 맺어진 친선관계이므로 필연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유럽연합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와 유럽연합은 아주 긴밀한 관계입니다.미국은 아마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그들은 1950년에 이미 대 조선 경제제재와 봉쇄정책을 취하였고 전문기구를 두어 조선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미국의 경제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자하러 올 거고 미국 정부도 그들을 통해 조선을 알고자 할 것입니다.”
김사장이 말한 1950년 미국이 제정한 대 북한 경제제재는 미국재무부 외국자산관리국이 기초한 경제제재 규정이다.이 계획은 이미 수차에 걸쳐 수정되었다.최근이 수정은 클린턴 대통령이 1999년9월17일에 대 북한 경제제재를 완화키로 한 것이다.이같은 조치는 북미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중지할 데 관한 북미간의 협약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도 양측은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일본정부의 태도는 그다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일본 상인들은 국내 경제 시장이 안 좋으므로 거액의 자금을 두고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그들은 신의주 특구에 투자하고자 할 것입니다.”
양빈의 말에 이어 김사장이 한 마디 하였다.
“일본 정부는 조선을 적대시 합니다만,우리의 일본에 대한 수출은 대 중국 수출의 2배가 넘습니다.자,아래 문제로 넘어갑시다.”
허 부위원장이 계속 질문하였다.
“화페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양빈이 대답하였다.
“조선측의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호텔과 상점들에선 달러와,엔화,위안화,유로화 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를 쓰고 있다.홍콩달러도 평양에서 대량 유통된다.그러나 북한화페는 외국화폐와 직접 태환하지 못한다.북한은 과거 중국처럼 태환권을 사용해 간접적으로 외국화폐와 태환을 한다.미래의 신의주 특구의 화페는 주로 달러화,위안화,유로화,엔화,캐나다 화폐,호주 화폐 등이 사용될 것이다.북한의 화폐와 직접 바꾸지 못하면 북한의 금융정책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그런 연유로 양빈은 바람따라 돛 달기로 ‘북한측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한 것이다.
허명규가 또 물었다.
“특구의 관세는 얼마입니까?”
양빈의 대답은 간다했다. “면세입니다.”
“특구의 여권은 어떻게 냅니까?”
양빈은 허명규의 물음에 반문으로 대답했다.”이건 아주 큰 문제인데 조선측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특구의 여권은 북한 정부가 발급하도록 하면 정부의 권위에도 손해될 것이므로,이 조항만큼은 반드시 특구 정부가 발급하도록 해야 합니다.조선정부가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대부분 수교하였지만 일본 미국 등 미수교국들이 있는데 그런 나라 사람들도 특구 여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특구 여권은 상업 거래에 편리한 것입니다”
양빈도 한마디 강조하였다.
“신의주 특구 여권은 특구가 발급해야 합니다.”
“중앙 정부가 발급권을 주면 특구는 하자 없이 잘 해야 합니다.그 다음으로는 특구에 왜 구기(區旗)와 구휘(區徽)가 있어야 합니까?”
허명규의 이런 물음에 뤄웨이젠의 대답은 간단했다.
“대외교류에 필요합니다”
허명규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대외교류는 조선국기로도 될 것 아닙니까?”
줄곧 말문을 닫고 있다시피 하던 마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우리 특구와 조선이 국제교류에서 같은 조선국기를 써서는 안 됩니다.”
뤄웨이젠이 한 마디 부언하였다.
“어떤 나라는 조선으로 가지 못하게 하지만 특구로 가는 건 허가합니다.그러므로 조선국기를 쓰면 불편하나 특구 구기를 쓰면 편리합니다.특구 여권과 같은 이치입니다.”
양빈도 한 마디 덧붙였다.
“일본이 이토 회사도 정부의 규제 때문에 조선산 과일,채소,화훼.수산물 등은 수입이 안되지만 특구 산품은 가져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사장은 한 걸음 물러섰다.
“만약 필수적이라면 반드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이건은 우리가 중앙에 보고하겠습니다.”
뤄웨이젠이 말했다. “국제적인 회의에 참가하고 회원이 되려면 표징이 있어야 하고 회기도 필요합니다.여권을 발급하는 목적은 특구 여권 휴대자와 조선 여권 휴대자를 구별하는 것이므로 특구의 휘장이 있어야 합니다.”
“구휘,구기,여권에 대하여 우리가 중앙에 보고할 것입니다.”
김사장의 말이다.
양빈은 다시 면세 부분을 강조하고 나섰다.
“특구는 바로 자유무역구이고 면세구역구이므로 면세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김사장이 이렇게 물었다.
“만약 중앙 정부가 특구의 기와 휘장을 비준한다면 귀측은 어떤 방안이 있습니까?어떤 상징으로 쓰려 합니까?”
양빈은 “진달래꽃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진달래꽃을 쓰자는 생각은 내가 내놓은 것이다.이전에 내가 장백산 지역에 하향하였을때 늘 조선족 친구들로부터 그들이 진달래꽃을 가장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그뿐 아니다.1960년 대에 베이징에서 본 조선국가예술극단의 대형 오페라 ‘꽃파는 처녀’에서도 그 꽃은 혁명의 암호이자 상징이었다.지난 4월 평양에 체류했을 떄,어느날 오찬을 들던 양빈이 특구 휘장은 어떤 꽃으로 하는 것이 좋겠냐고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어떤 사람은 나라꽃이 좋다고 했다.그떄 식당에도 나리꽃이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다.그러나 나는 “진달래꽃이 좋습니다.그것은 조선이 혁명가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나의 말은 사실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정확한 말은 오늘 북한측 수석대표가 해주었다.김사장은 웃으며 이렇게말하였다.
“우리의 국화는 목란꽃입니다.제 생각에는 특구의 기와 휘장에 양빈씨의 사진을 박는 것이 좋을 듯 한데요?”
물론 농담이었다.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양빈은 쑥스러워 하며 “특구의 기와 휘장은 귀측이 결정하십시오”라고 했다.
김사장이 웃음을 거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목란꽃은 우리의 국화입니다만 우리의 최고회의가 그것을 특구의 기와 휘장에 쓰게 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우리는 양총재님의 의사를 가지고 가겠습니다.기본법은 우리가 마주 앉아 토론을 해야 하는데 지금 기본적인 틀은 토론이 되었습니다.남은 문제는 세부적인 토론입니다.
그건 다음 기회에 토론하도록 합시다.”
양빈이 대답했다.
“기본법 토론을 끝내고 정리한 다음 김사장님이 중앙에 드리십시오.6월에 제가 또 들어가겠습니다.그리고 아르헨티나,싱가포르,호주와 홍콩의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함꼐 갈 겁니다.바라건대 6월 제가 조선에 갈 때 기본법이 조선 최고회의에서 통과되었으면 합니다.대외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본법입니다.”
허명규가 한마디 하였다.
“기본법 선포에 앞서 우리는 먼저 특구 개방을 선포해야 하는데 이는 최고 국무회의가 심의하고 마지막으로 최고회의에서 통과된후 선포해야 합니다.”
“대외적으로 기본법 선포는 어느 때가 될 것 같습니까?”
양빈의 이런 물음에 허명구는 이렇게 답하였다.
“아무리 빨라도 아마 서너 달 걸릴 겁니다.먼저 기본법이 통과된 다음에 선포해야 하니까요”
허명규의 예측은 비교적 정확한 것이다.이번 회담이 5월20일인데 신의주 특별행중구 기본법이 공식 통과돼 선포한 것은 9월 23일이었으니 꼭 4개월이 걸린 것이다.
“어느 때쯤 선포가 가능하겠는지 김사장님께서 한번 예측해 보십시오.”
양빈이 재차 기본법 선포 시일을 물었으니 김사장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만들면 기본법이 아니지요.우리 대표단 사람들은 누구도 기본법 선포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그것은 사실 당신들의 행동에 달린것입니다.”
“협정을 체결하면 제가 특구장관이 되는 거지요?”
양빈이 불쑥 내묻는 말에 김사장은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특구 수뇌는 당신이라고 김장군님이 결정한 것 아닙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신의주 특구는 바로 양빈씨가 지도하는 것입니다.당신이 우리를 믿지 못하니 우리는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아니,그게 아닙니다.우린 한집안 식구가 아닙니까?전 바로 특구건설 때문에 조급해서 그럽니다.기본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전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 한마디에 금방 팽팽해졌던 기분이 그만 누르러졌다.우리는 드디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양빈,50 평방킬로미터를 더 요구하다
3일째 회담은 그냥 네덜란드촌 암스테르담 기차역 3층 홀에서 진행되었다.회담에 진입하기 전에 양측 대표들은 2층 홀에 설치된 모래로 만든 신의주 특구의 전경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모형은 북한측이 제공한 82평방킬로미터 면적의 신의주 특구지도에 따라 설계한 것이다.신의주 특구의 압록강 연안은 긴 녹지대였고 시내구역은 완전히 세계적 수준의 현대화한 고층 빌딩지대였고 시내구역은 완전히 세계적 수준의 현대화한 고층 빌딩과 하이테크 구역,별장 구역,공항과 널찍한 8차선 도로,공원처럼 꾸며진 생활구역으로 보는 사람들의 동경을 자아내게 하였다.
북한측 대표들도 눈길을 떼지 못하며 찬탄을 금지 못했다.
양빈이 대표단을 모셔다 구경시키는 것은 특구의 이러한 도시 기획과 아름다운 전경으로 북한측의 특구에 대한 믿음을 더 크게 해주는 목적 이외에도 항구와 향후 그 지역 거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문제 때문이었다.북한측이 제공하는 항구는 3천톤급 화물선밖에 드나들지 못하는데 특구가 필요로 하는 것은 1만 5천톤급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다.우리가 희망하는 바는 주단도까지 끌어들여 항구,창고 및 화학공업용지로 쓰려는 것이다.신의주 특구의 모형 앞에서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압록강의 출해구와 항구 선택의 편이성을 읽을 수 있었다.
항구기획설계 전문가 왕뤄가 모형 앞에서 북한측 대표들에게 항구 건설의 가장 이상적인 지점을 소개하였다.
북한 묘향산에서 항구전문가 황뤄
나는 왕뤄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양빈에게 항구 건설지점의 선택문제를 보고하면서 신의주 특구 기획에서 우선적으로 항구 지점을 선정해야 비로소 설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하는 말을 들었었다.그것은 특별히 전문성이 크고 복합하며 중대한 공사이기때문이다.북한측이 제공한 항구는 수심이 얕은 천수(淺水)항인데 반해 신의주 특구가 결정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만톤급 이상의 화물선이 정박할 수 있는 심수항이다.왕뤄는 일찍 항구부근에 정유공장을 세울 것을 제안하였는데 극서 역시 유조선 부두와 창고에 용지 문제 등과 관련되는 것이다.
양빈은 모두 얼마의 용지가 필요하냐고 왕뤄에게 물었다.왕뤄는 5평방킬로미터면 된다고 대답하였다.
“만약 정유공장의 페기물도 현지 처리하고 여러 가지 화학공장도 함께 건설하려면 용지가 얼마나 더 들어야 하곘습니까?”
양빈이 이 물음에 왕뤄는 웃으면 대답했다.”2배 가량이면 됩니다.”
1997년 4월 북한은 미국국적의 동포 박경윤 여사가 이끄는 금강산국제그룹과 합작하여 주단도와 신도를 포함한 85만 평방 킬로미터의 면세 개방구를 기획하였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나는 이 일을 양빈에게 알려주면서 첫쨰,비록 추진력은 크지 않았지만 북한은 1997년에 이미 ‘개방’을 생각하고 준비했었으며 둘쨰,북한은 주단도를 활용하는데 동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따라서 우리는 기본합의서와 기본법을 설계할 때 주단도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 가지 보충할 점이 있다.양빈 대표단은 새로 참여한 차오성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나의 20년 지기다.그는 중국공산당 선전시위원회 상무위원,사구(蛇口)외자유치국,사구공업구 이사회 부이사장 겸 사장을 역임하였고,초상은행(招商銀行)과 평안보험공사(平安保險公司)를 창설했었다.사구 건설이 총지휘자로서 그는 자신의 청춘과 재능을 모두 사구 특구에 바쳤다.
바로 북한측 대표들이 선양에 와서 제3차 회담을 하던 때 차오성리씨가 자신의 친구 리자화(李家華)를 네덜란드촌으로 데려왔다.리자화는 대 투자자이다.그는 이미 觳牌석유 등을 망라한 국제재단을 만들었고,신의주에 30억 달러를 투자하여 대형 정유공장과 유조선 부두 등을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외국 재단이 최초로 밝힌 이 거대한 투자계획은 양빈을 미칠 듯 기쁘게 하였다.양빈은 초대형 벤츠차로 나와 차오성리가 그 투자자를 모시고 선양의 야경을 구경하게 하였다.그 후 리씨는 9월23일 평양에서 거행된 양빈의 특구장관 선서의식에 참석하였다.
리자화의 투자구상은 양빈이 북한측에 항구와 정유공장 용지 50평방 킬로미터를 추가로 요구할 결심을 굳히게 하였다.
이런 연유로 인해 사흘쨰 회담은 하구선정 문제로 시작되었다.양빈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주단도를 결정할 수 있습니까?부두는 특구에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주단도가 안될 경우 항구는 반드시 심수항을 선택해야 합니다.정유공장은 원유를 들여와야 하므로 항구는 반드시 만톤급 이상 화물선이 정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특구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조선의 미래 경제발전에도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귀측의 화물도 드나들 수 있는 것입니다.”
“국제적인 부두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김사장이 이렇게 수긍하자 양빈은 한걸은 더 밀고 나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국제적인 투자 재벌그릅이 있는 것입니다.
觳牌석유까지 포함하여 신의주에 30억 달러를 투자하여 정유공장과 유조선 부두 및 후속 가공에 필요한 각종 화학공장을 건설할 계획입니다.이 아이템은 우리 특구에 상당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조선의 에너지와 화공제품 공급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김사장이 공감을 표했다
“아주 지당한 말씀입니다.우리는 이 아이템을 대단히 중시하고 또 지지할 것입니다”
“문제는 주단도가 결정되지 않아 항구를 다른 쪽으로 선택해야 하니 토지문제에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양빈의 이 말에 김사장은 확실한 답을 주었다.
“그건 문제 아닙니다.우리는 곧 사람을 배치해서 새 항구가 들어설 지점을 선책하겠습니다.그와 관련된 토지가 대략 얼마나 됩니까?”
“50평방 킬로미터입니다.”
“돌아가서 최고 당국에 보고하여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국제적인 부두와 대형 정유공장은 우리에게도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후 우리는 북한 정부가 대계도(大鷄島)부근에서 50평방 킬로미터의 토지를 우리에게 주기로 하였다는 통보를 받았다.그러니 원래의 82평방 킬로미터에 50평방 킬로미터를 합하여 신의주 특구면적이 추가됐다.심수항을 가진 이 50평방 킬로미터 이 땅은 미래가 특구 건설에 중대한 경제적 의의를 갖는다.미래의 대형 국제해운 항구와 정유공장 화학공장이 모두 이곳에 서게 된다,
양빈은 다른 문제를 내놓았다.
“특구의 거주민 이주 문제도 일찍 손을 써야 합니다.”
김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주비용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토의하지 않았습니까.우리의 의견엔 다른 문제점이 없곘지요?”
“한집안 사람인데 문제가 없고 말고요.”
양빈은 우선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다시 한번 덧붙였다.
“이주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요?먼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건지 아니면 나가지 않은 건지요?”
회의에서 거의 말이 없던 북한측 대표 한 사람이 말헀다.
“남게 되는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남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김사장이 말했다.
“구체적인 숫자는 우리도 아직 통계를 내지 못헀습니다.”
“조선측이 거주민 배치 문제를 연구해주시기 바랍니다.그럼 다음 내일 다시 토론합시다.”
양빈의 의견에 북한 대표가 동의를 표했다.
“좋습니다.내일 기본합의서를 토론할때 다시 논의합시다.”
양빈은 계속 자기가 준비한 의제에 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가급적이면 특구 기획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해야겠는데,우리 대표단원들의 신의주 출입수속을 간소화할 수 없겠는지요?”
“됩니다.그러나 외국인은 안 됩니다.”허명규의 말이다.
양빈이 난색을 표했다.
“우리의 도시기획,항구설계 모두가 세계의 저명한 설계회사와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하는 것이며 그들은 직접 신의주에 가서 시찰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허 부위원장이 해석을 하였다.
“만약 외국인이 먼저 중국에 왔다가 다시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갈 경우 우리는 변경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여권이 있으면 좀 편리하게 됩니다.”
양빈이 감격적인 어조로 말했다.
“단동시는 특구의 설립에 관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14개 연해 개방도시 가운데 유독 단둥시만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제 기회가 오니 그곳 시민들이 더 없이 격동되있습니다.단둥측은 부두를 하나 건설하여 물류를 해결하는데 나서겠답니다.그리고 배로 노동자와 관광객들을 실어 날라 사람들 출입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로 하였습니다.그런데 협의를 체결한 후 중국의 자동차가 신의주에 들어갈 수 있곘는지요?”
지금의 북한 세관은 외국 자동차,화물차가 직접 신의주에 들어가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단 북한측과 운수협정이 되어 있는 회사만 예외이다.유라시아그룹이 평양 농업기지로 수송하는 화물도 반드시 북한의 관련 규정에 따라야 했으므로 공사 진전에 종종 영향을 끼쳐왔다.그 때문에 양빈은 골치가 아팠으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북한측 대표 허명규 부위원장은 “그건 문제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종합적인 합의’에 도달한 제3차 회담
5월12일 부터 23일까지 양측은 주로 기본합의서에 대하여 협상하였다.북한측이 내놓은 기본합의서(토론용)는 모두 6장 54개 조항이었다.’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명의로 작성한 이 합의서의 상대측은 양빈이 ‘네덜란드유라시아무역공사’였다.북한측의 법적인 대표는 김용술이었고 직책은 ‘경협회’위원장이었다.
북한측이 제시한 기본법‘제1장 총칙’에는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위임으로 신의주특구을 설립할 데 관한 협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양빈 대표단이 내놓은 기본합의서 본문이 공식명칭은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네덜란드유라시아국제무역회사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립에 관한 기본합의서’(초안)로 되어 있었다.
이 기본합의서는 장과 절을 나누지 않고 모두 24개 조항으로 되어있다.이 합의서는 서두에 “조선의 경제협력에 관한 인가는 이미 조선 최고권력기구의 승인과 권한수여를 받았고,조선 최고권력기관은 이 합의서가 조선에서 법률적 효력을 가짐에 대하여 인정하였다.”고 밝히고 있다.5월22일 오후,양측은 ‘합의서’의 큰 틀에 대하여 공감대를 형성하였다.이를 축하하여 북한측 대표단은 선양의 묘향산 식당에서 만찬연회를 베풀어 양빈 대표단 전원을 초대하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은 이미 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되였고 2002년 9월24일에 이 결정을 선포하였다.’기본합의서’는 비록 쌍방의 인가를 받았고 조인식을 하였지만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쌍방의 입장을 존중해 필자는 관련된 상세한 조목의 내용을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합의서의 세부에 관한 회담은 3월말부터 9월23일 최종 합의서에 조인하기까지 줄곧 진행되었다.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양측의 ‘기본합의서’회담은 ‘기본법’회담처럼 어렵고 길지 않았으며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었다.
5월23일 회담에서 양빈은 평양 농업기지의 온실 건설의 진척상황을 간단히 소개한 후 이렇게 말했다.
“평양 온실 프로젝트의 계약 중에 전력조항이 없습니다.제가 보건대 귀측이 전력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온실은 전력이 시급히 필요하니 제가 달러를 내고 사겠습니다.”
그러자 김사장이 괘재를 불렀다.
“양총재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양빈은 우리의 현재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고 장군님에게도 더 없이 충성합니다.일부 문제가 생기는 건 다시 보충 협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신의주 특구 개발은 우리 모두와 김장군님의 양빈에 대한 신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의주 특구 개발을 두고 국내외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앞으로 어떤 시끄러움이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하지만 중국 정부는 지지할 것이고 돈독한 조중친선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우리는 아직 공식적으로 사람을 베이징에 보내 특구의 일을 통보하지 않았습니다.아마 좀 시일이 지나면 사람을 파견할 것입니다.여러분 안심하십시오.합의서에 만약 다른 문제가 있으면 협상하여 해결합시다.”
“기본법에도 무슨 문제점이 있으면 계속 이야기해 봅시다.”허부위원장이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다시 한번 장관의 권리에 대해 상세하게 토론해 봅시다.우리는 특구 장관을 50년 간으로 하려고 하는데.입법회에서 확정될 임기를 한번에 5년 간입니다.”
윙융시가 대답했다.
“특구 장관은 조선 최고회의가 임명합니다.입법회가 통과시키는 임기는 5년이지만 연임할 수 있습니다.”
윙융시는 이번 3차 회담부터 양빈 대표단의 성원이 되었다.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부를 졸업한 그는 일찍이 1980년대에 중국공산당 중앙농업정책연구소에서 일했고,80년대 말 공직을 버리고 한 유명한 투자관리회사의 이사장을 역임하기로 하였다.양빈은 그의 경력을 소중히 여겨 회담시 자신의 옆에 앉혔다.그는 마닝과 함께 양빈의 좌우 팔로 불리웠다.그 후 윙씨는 양빈에 의하여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 수석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나는 양빈이 친필로 사인한 제1호 임명장을 보았다.윙씨는 머리가 매우 명석하고 처사가 원활한 지식인이며 또한 대단한 정치적 두뇌와 지략을 구비하고 있는 가볍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윙융시가 말한 후 뤄교수가 자신이 생각을 털어놓았다.
“5년은 짧지 않을까요?외자유치가 갓 시작을 뗀 데다 많은 외국 상인들이 양빈씨의 친구이고 그의 명성과 신의를 보고 오는 것이므로 시간이 긴 것이 좋습니다.10년이 어떨까요?”
양빈은 뤄웨이젠이 자신을 위해 임기를 연장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측의 반대를 받을 것 같아 짐짓 놀람을 나타내며 “10년?”하고 물었다.
그러자 왕후이둥이 즉시 “8년”이라고 고쳤다.
왕후이둥은 미국유학을 한 박사다.미국의 한 다국적회사의 중국주재 수석집행관을 하였는데 지금은 상하이 푸둥의 한 하이테크 회사의 이사장으로 있다.이 사람은 사고가 민첩하고 영어를 능란하게 구사한다.
뤄웨이젠이 “프랑스는 7년인데”라고 하니 윙융시가 북한측에 대고 “조선은 몇 년입니까?”라고 물었다.
허명규는 “5년입니다.”라고 대답하고는 “특구 장관의 자격과 범위는 어떻게 한정합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뤄웨이젠이 신중하게 한 마디 보충했다.
“의회가 통과시킨 결의안을 장관이 서명하여 선포하는 권리가 있으나 장관이 서명을 거부하여 결의안을 의회에 돌려보낼 권한도 있습니다.이 범위에서 장관에게 거부권이 있는 겁니다.”
허명규는 또 물음을 제기했다.
“비상설기구는 설립하지 않습니까?”
뤄웨이젠이 대답하였다.
“설립할 수 있습니다.세게 각 국에 다 있습니다.”
허명규가 또 물었다.
“행정부의 권한은 어떤 것들입니까?”
이에 뤄웨이젠이 이렇게 반문하였다.
“특구 정부를 말하는 것입니까?”
허명규가 “특구 정부와 동등한 것이지요,”라고 대답하니 뤄웨이젠은 이렇게 물었다.
“특구 행정부 장관은 특구의 사무를 책임지며 각 부처의 업무를 조직하고 지도합니다.”
양빈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어느덧 식사시간이 되었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김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문제는 다 조선측이 안을 내십시오.우리는 6월에 평양에 가겠습니다.조선 최고회의가 기본법에 동의 서명하고 효력을 발생시키기 바랍니다.시간을 쟁취해야 특구의 기획과 건설을 하는데 편리합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양측은 회담에서 기본법의 큰 틀을 다 짠 셈이었다.양빈이 “김장군님이 결재하게 합시다.”란 한 마디로 특구의 구역명칭 문제를 조선의 최고 지도자에게 올려보냈고,특구 장관의 삼권 부분에서도 큰 문제를 다 해결하였다.동시에 특구의 땅도 50평방 킬로미터나 더 얻어왔으니 제3차 회담은 승리로 끝냈고,특구의 미래를 위해 좋은 기반을 닦은 것이다.특구의 4개의 요직 즉 입법회 의장,검찰장,법원장과 공안국장 직무는 시종일관 북한측 인사가 담당할 것을 주장하여서,그것만은 다음 번 회담 내용으로 남겨두었다.이 문제는 그들 나름대로 파악이 있었던 바 최소 2개의 적위는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5월24일은 조선 대표단이 선양에 체류하는 마지막 날이었다.양측은 이미 달성한 합의결과에 따라 각자 수정한 기본법 기본합의서를 정리하였다.
북한측 수석대표 김사장의 말을 빌면 “우리 조선 대표단은 선양에 와서 양총재님 및 여러분과 며칠 간 상담하였는데 국가가 우리에게 부여한 권한 내에서 종합적인 합의를 달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북한 대표단은 이번 회담에서 주요한 과업을 완수하였다,즉 신의주 특구 기본법의 기틀과 기본합의서를 완수함으로써 ‘종합적인 합의’를 달성한 것이다.북한측은 또 양빈으로부터 별도의 성과를 얻어냈으니,20여 명의 농업기술 연수생을 네덜란드촌에 보내면 유라시아그룹측이 이들을 교육시켜 주기로 한 것이다.
두 달 남짓한 학습을 거치면 그들 젊은 농업기술자들은 네덜란드의 온실화훼,야채의 포자 배육,양식과 관리기능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제7장
다시 네덜란드촌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
2002년5월19일,선양 네덜란드촌에서 양빈이 북한 대표단을 위해 마련한 만찬회
신의주 특구에 대한 단둥시부푼 기대
평양에서 돌아오자 신의주에 특구를 건설한다는 소식이 퍼져 단동 시민들 속에서 굉장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단동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의 압록강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면 신의주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이 도시의 경제건설과 발전은 연해의 다른 개방도시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신의주 특구설립은 단둥시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될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이때문에 나는 곧바로 단둥으로 달려가 그곳의 지방관리들과 경제계 인사들,나아가서는 수많은 시민들을 방문하였다.
먼저 중국공산당 단둥시의 서기 차이톄푸씨를 탐방하였다.그는 북한이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한 것이라는 데 대해 단둥시의 간부들과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들었지만 랴오닝성위의 통지나 지시 같은 것은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시위서기 신분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고 단지 단둥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할뿐이라고 하였다.
차이톄푸씨는 이렇게 말했다.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한다는 소식은 단둥시 간부들 가운데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의견들도 서로 같지 않다.어떤 사람은 북한이 최근 몇년 간 너무 가난하며 무역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남이 낙후하다는 소리 하지 말고 남들과 비기지도 말며 우리 자신이 잘 생각해 보라.1960년대 1970년대는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더 못 살지 않았느냐?도시환경이나 생활수준이 그들보다 못했다.1980년대부터 우리가 덩샤오핑 동지의 개혁개방정책 때문에 비로소 차츰 좋아진 것 아니냐.조선도 개방개혁하면 재빨리 우리를 따라올 것이다.나라가 작고 인구가 적고 단일한 민족이어서 부담도 작고 일하기도 쉽다.게다가 김정일의 말 한마디면 다 되는 나라 아니냐.김정일의 조선에서의 위상은 그때 우리 모씨 어르신의 중국에서의 위상보다 못하지 않다.”
신의주 특구를 어떻게 보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변경도시의 지도자로서 저는 조선인민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우리 단둥 사람들은 중조 두 나라는 입술과 이의 순치관계라는 데에 감정이 아주 깊습니다.신의주에 특구를 설치하면 단둥이 먼저 실리를 보게 될 것니다.그들이 건설작업을 하려면 인력이 필요할 것이고 먹고 마시고 쓰는 것 또한 우리가 다 공급해야 할 것이니까요.”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하면 단둥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라는 나의 물음에 차이톄푸씨는 대답 이렇게 반문하였다.
“우리는 아직 신의주특구 설립의 구체적 상황을 알지 못하는데 당신들이 소개해줄수 없습니까?”
나의 취재에 동반한 유라시아그룹 부총재 스쥔이 그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우리는 조선에 가서 주로 ‘기본법’에 대하여 담판을 하였습니다.김위원장님의 배려하에 큰 틀을 이미 짰으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세부적인 문제는 해결이 쉬울 것입니다.협의를 체결하면 조선 최고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입니다.”
차이톄푸씨는 머리를 끄덕이며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던 일을 회고했다.
“김정일은 단둥에 아주 깊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그전에 단둥시 지도자인 왕원첸(王文謙)이 신의주와 평양을 방문할때 김정일 위원장이 친히 접견해주셨지요.
단둥시 당과 정부의 대표단에 크게 배려해주어 방문이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2001년1월 김정일 동지가 중국을 방문할 때 상하이와 베이징을 돌고 귀로에 단둥역에서 20여 분 머물렀는데 랴오닝성위 부서기 장청샹과 저 그리고 장줘융 시장을 열차로 초청하여 친절하고도 우호적인 환담을 하였습니다.그때 저는 처음으로 조선의 지도자를 만나 뵌 것이었습니다.그 분은 농업문제에 아주 큰 관심을 보이며 우리 단둥의 농작물 생산량,품종,화학비료,온실하우스,도시건설,고속도로 등등을 소상히 물어보셨습니다.김정일윈원장은 차안이 따뜻하여 셔츠 하나만 입고 계셨는데 떠날 시간이 되어 우리가 작별을 고하자 기어코 차 문 앞까지 전송해주셨습니다.그는 영하 20도의 찬바람을 무릅쓰고 차 아래 솜옷을 입은 중국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차이톄푸씨는 원래 랴오닝성위 조직부 부부장이었다.2002년 11월 20일 단둥시로 전근되어 단둥시의 서기가 되었다.비록 길지 않는 시간이지만 단둥시에 대한 감정이 아주 깊었다.그의 말을 빈다면 ‘발전 잠재력이 아주 큰 단둥 이 땅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차이씨는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하면 단둥의 미래가 어떻게 될것 같습니까?”라고 했던 나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새 세기에 단둥은 일거에 도약하는 방식의 발전을 해야 하는데 외부의 견인없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단둥은 대외개방적인 외향성 경제로 나아가는 발전전략을 써야 합니다.이는 단둥 경제 진흥의 필수적인 길입니다.단둥시의 인민들은 모든 힘을 다 기울여 외국의 사업가와 자본을 유치해야 한다는데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였씁니다.”
필자가 단둥빈관에서 만난 단둥시장과 비서실장,오른쪽은 단둥시장 장줘융,왼쪽은 단둥시 정부 비서실장 쑤융성
“단둥은 개방해야만 비로소 지리적 우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우리는 조선,일본,한국,러시아와 모두 가깝습니다.작년 조선과의 무역액은 2억 달러였습니다.(수입 3천만 달러,수출 1억7천만 달러)그밖에도 소규모 무역과 변경 보상무역이 있는데 모두 해마다 확대되고 있습니다.”
“신의주를 특구로 하면 우리에겐 아주 다행스러운 기회가 되지요.우리의 개방을 더욱 가속화하게 할 테니까요. 그 곳의 물류,정보는 단둥에도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그것들은 단둥과 랴오닝성의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전국이 경제발전에도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장줘융 단둥시장한테 신의주 특구 건설이 단둥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신의주가 개방되어야만 단둥시가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방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단둥은 변두리 지역의 변경도시입니다.조선이 그냥 닫혀 있으면 단둥의 연강,연변 우세가 사실 다 열세로 되어 버립니다.일단 맞은편이 개방을 하면 이 열세는 즉시 우세가 되는 거지요.그래야 연강의 우세인 압록강의 자원도 개발될 수 있고 연해의 우세인 95킬로미터 해안선을 이용하여 대외개방의 힘이 커질 수 있습니다.또 연변의 우세는 신의주가 닫혀진 상태에 있어 공항,부두,고속도로 등 기반시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신의주가 개방된다면 단둥의 지위가 상승될 것입니다.단둥의 경제에도 하나의 큰 추진이 돌 것이고요.우선 신의주는 건설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겠습니까.단둥의 118개 건설회사와 작업대들이 인력과 원자재 등 물자를 모두 단둥지역에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숙박과 각종 시설 ,공사장 진업,운수 등의 비용에서 상대적 경쟁력이 생기는 것입니다.건축자재와 철강재,목재,시멘트,전기기계,심지어 벽돌과 기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둥에서 수입해야 합니다.단둥은 자체적인 생산과 화물수송 등이 모두 편리하지만 북한은 이런 물류가 없습니다.단둥은 신의주의 후방공급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신의주에 만약 특구를 설치하면 단둥 사람들의 사상의식도 크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이전에도 단둥은 대외개방도시로 발전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말뿐이었습니다.신의주 특구를 설립한다면 단둥은 단숨에 대외개방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국제시장과 지견하게 될 것이며,외국의 금융자본 및 정보와 직접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의주는 북한의 경공업 도시이지만 세 개의 제지공장 (신의주제지공장,조선제지공장,만선제지공장)과 의류가공공장 밖에는 별로 중요한 공업시설이 없다.특히 기초공업 이를테면 대형 발전소가 없고 급수와 통신시설이 빈약하여 전력이 풍족하지 못하고 외부세계와 연계할 통신망이 없다.심지어 압록강빌딩이라는 외국인 호텔 외에는 호텔도 오락장소도 없어 투자나 건설인력 및 관광객들이 가더라도 당장 먹고 잘 곳도 없다.한마디로 모두 새로 건설해야 할 형편이다.
일단 20만 내지 30만명의 사람들이 밀려들면 어디서 자고 먹고 하겠는가?그러니 건설 초기에는 모두 단둥에 머무는 수밖에 없다.국내의 사업가들이 단둥에 발을 붙이고 사무소를 세우고 회사를 만들고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을 단둥이 다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장줘융 시장은 단둥시는 중앙정부와 성정부가 지시만 내리면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하면서 사회치안,상공관리,세무,교총,거주 등에 모두 대응할 능력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특구 설치가 공식 발표되기만 하면 수많은 사업가가 모여들 것입니다,외국 사업가들이 회사를 차릴 경우 정상적인 수속은 이틀안에 다 해줄 것이며 필요시 한나절 안에도 다 해줄 수 있습니다.우리는 가장 편리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카페리는 매일 수만 명의 인력을 대안으로 수송해줄 것입니다.단둥에서 신의주 특구로 출퇴근하게 되면 그 곳의 주택과 용수,전기,쇼핑시설 등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게 될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단둥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덩바오췐(鄧寶權)부시장,취런뎬(曲仁田)부시장,수융성
(蘇永勝)비서실장,단둥 대외경제무역국장 한수윈(韓淑雲)여사,단둥시 해양어업국장 승웨징(宋悅景),민영기업가 왕청구이(王成貴),자오원스(趙文詩)등을 취재하였다.그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신의주 특구 설립에 관해 들은 바있다고 하며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수윈 대외경제무역국장은 북한과의 무역을 소개하면서 단둥시 수출무역은 1997년부터 줄곧 랴오닝성의 3위를 기록중인데,2001년 수출액 7억 7861만 달러 가운데 대북한 수출액은 1억7080만 달러로 전해보다 10% 성장하였다고 밝혔다.
한국장에 의하면 대북한 수출은 주로 식량,식용유,식품,의류,원단,생필품,농산물,
종자,화학비료,농업용 비닐 박막 등이다.최근 북한경제가 다소 회복세를 보여 이전에는 흑백 텔레비전을 수출했으나 지금은 칼라텔레비전,냉장고,세탁기.전기밥솔 등 가전제품도 수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는 인테리어 자재와 사무실용품 및 아동식품 등의 수출도 점차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신의주는 어떤 모습인가? 그 곳에 특구를 설치하면 앞으로 단둥의 대외무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다년간 대북한무역에 종사한 한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금년 5월 우리는 나진 선봉에 갔었습니다.그 곳의 약점이 여러 면으로 나타났는데 우선은 교통여건이 안 좋은 것입니다.
2002년5월,단둥빈관에서 필자와 단둥시 대외경제무역국 국장 한수원 여사
중국의 훈춘시와 조선의 통상 항구가 5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거기에서 나진 선봉까지는 다시 40여 킬로미터를 더 가야 합니다.교통이 아주 불편한 거죠.다음은 나진 선봉의 유치대상이 주로 중국 사업가인데,중국 사람들의 대 북한무역은 주로 싼 제품들입니다.조선의 구매력이 약하기 때문이지요,홍콩과 마카오의 사업가가 그 곳에 20여 층이英皇大酒店이라는 호텔을 지었는데 주로 중국인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거기서 소비를 합니다.평시에는 투숙객이 별로 많지 않고 주말에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 그 곳에 가서 소비를 하는데 이틀 묵고는 돌아들 갑니다.하지만 신의주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훈춘이 아닌 단동입니다.
단동의 장점은 교통이 편리한 것입니다.중조 무역에선 오로지 단둥만이 하늘의 혜택을 받은 곳이다.압록강대교가 신의주로 직통하여 철도나 도로로 다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단둥에는 대조선 통상구가 13개나 도며,그 가운데 대동.낭두도(浪頭島)는 일급 통상구입니다.”
특구 이름은 ‘장군님이 짓는다!’
2002년 5월 17일,앞당겨 네덜란드촌에 도착한 양빈 대표단 성원들은 북한 대표단을 영접해 제3차 회담을 할 준비를 하였다.
(공식 회담은 3월에 북한 대표단이 처음 네덜란드촌을 방문하였을 때가 제1차.4월22일부터 4월 28일까지 양빈 대표단의 평양방문이 제2차였다.5월18일부터 25일까지의 회담은 제3차가 된다)
5월 18일 오후 1시 정각,북한 대표단은 평양으로부터 비행기편으로 선양 도선(桃仙)공항에 도착하였다.김동규 등 14명이 변방 검사소를 거쳐 걸어 나올 때 유라시아회사의 조선족 복장을 입은 두 여성이 나아가 귀빈들에게 생화를 안겨주며 환영을 표했다.
양빈은 리강 ,스쥔,볜세우저,저우샹과 중국 대표단(양빈 대표단을 지칭)전원을 이끌고 공항 홀에 이러러 영접하였다.
오후 2시,우리의 긴 승용차 대열이 네덜란드촌에 도착하였다.유라시아그룹의 많은 종업원들이 손에 작은 북한국기와 생화를 들고 정문으로부터 사무청사에 이르는 구간에 양쪽에 늘어서서 대표단을 환영하였다.북한 대표단은 별장에 안내되어 잠시 휴식을 하였다.그들이 든 6개 별장의 객실에는 이미 생화 ,과일,사탕,술과 쥬스 등이 놓여 있었다.양빈은 접대사무실 주임 저우샹에게 북한 대표단의 접대 수준은 우리가 평양 모란봉국빈관에서 받은 수준을 초월하여야 하며,손님들이 제집에 온 기분을 가지게 하여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5월19일 오전 9시 30분,회담은 네덜란드촌의 암스테르담 기차역 3층 대청에서 진행되었다.양빈 대표단의 성원은 15명이었고 북한측에 대한 공식호칭은 ‘신의주 특별행정구 개발건설 지도소조’였다.
대표단 명단을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 아래와 같다.
양빈(楊斌)조장
마닝(馬寧)부조장
리강(李剛)부조장
리잉저우(黎瀛洲)부조장
왕스푸(王時福)기획고문
둥롄파(佟連發)법률조 조장
뤄웨이젠(駱偉健)고급 법률고문
양다융(楊大勇)법률고문
추이양(崔揚)법률고문
리쑤(李肅)고급 정책고문
저우팡성(周放生)고급고문
왕 뤄(王諾)항구고문
왕후이동(王惠東)고급고문
웡융시(翁永曦)고급고문
차오성리(喬勝利)고급고문
이 명단은 양빈이 직접 관여하여 작성하고 프린트한 것이다.나는 후에 양빈의 통고를 받고 회담에 참석하여서 후보로 고문이 된셈이다.
아래의 북한 대표단의 명단도 양빈이 제공한 것이다.
북한측 대표단의 성원 총 14명을 순서에 따라 아래와 같이 적는다.
김동규(金東奎) 평양원예총회사 사장
계승해(桂勝海)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부위원장
허명규(許明奎)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법률담당 부위원장
이수길(李秀吉)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고문
안기우(安基宇)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부위원장
김명철(金明哲)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국장
이덕송(李德松)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고문국장
김광혁(金光革)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부국장
박성호(朴成浩)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통역
한선생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통역
19일의 회담은 주로 신의주 구역명칭에 집중되었다.이는 사실상 양측이 가장 골머리가 아프면서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의제였다.특히 양빈 대표단은 국제사회가 접수할 수 있게 하고 신의주 특구에 외자유치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특별행정구’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회담은 양측 수석대표의 대화로 시작되었다.
“오늘 회담의 의제가 어떤 것들입니까?귀측이 먼저 신의주 구역명칭을 말씀해보시지요. 가급적이면 이 문제를 조속히 결정하도록 합시다.앞서 평양에서 귀측이 제출한 특별행정구란 명칭에 대해서 우리가 연구한 후 최고회의에 보고하였습니다.우리는 양빈 총재님에게 삼권이 있다고 인정하는데 구역명칭을 신의주 특구라고 제안할 수 없겠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구역명칭을 여전히 신의주 특별행정구로 할 것을 주장합니다.완전히 외자유치를 위한 목적입니다.”
양빈의 이런 대답에 김사장은 이렇게 해석했다.
“명의상은 특구지만 사실상,또 내용상은 특별행정구인 것입니다.”
이 말은 응당 북한 대표단이 처음으로 특구의 내용 즉 양빈대표단이 제기한 ‘삼권’의 정치구조에 동의함을 명확히 시사한 말이라고 봐야 한다.
둥롄파 교수가 즉시 법률적 엄밀성과 표현의 측면에서 해석을 가했다.
“행정관리권,입법권과 사법권을 가지면 그것은 사실상 특별행정구인 것입니다.이 명칭은 삼권과 함께 매어져 있는 것입니다.특별행정구 하면 듣고 대번에 알게 됩니다.그러나 ‘특구’라고 하면 그 의미가 명석치 않고 삼권의 의미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북한 대표단에서 특히 ‘기본법’담판에서 주역을 맡았던 법률전문가가 있는데 북한 대표단 명단 중에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법률담당 부위원장’으로 적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허 부위원장’으로 호칭하여 왔다,
북한측에 대표들이 잇따라 구역명칭을 ‘특구’로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그러나 양빈측 대표들은 ‘특구’명칭에 동의하지 않았다.양빈이 말머리를 슬쩍 다른 데로 돌렸다.
“우리는 한집안 사람끼리 의견을 나누는 것이니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든 그대로 다 내놓아 보십시요.그래야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유보하는데 도움이 돌 것 아니곘습니까.저는 후반생을 모두 조선인민에게 바치고자 합니다.저는 늘 대표단에게 조선인민의 민족적 감정을 존중하라고 합니다.나는 우리가 신의주 특구를 하는 것은 바로 신의주와 조선이 쾌속 발전을 이룩하기 위함이란 것을 알리고자 합니다.”
양빈은 자기 곁의 ‘중국측 대표’들을 가리키며 김사장 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분들은 미래 특구의 임원으로 선출될 사람들입니다.마닝씨는 제가 네덜란드에 있을 떄에 사귄 친구이고 경제학박사인데 저와 함께 사업하려고 외국의 회사를 다 버렸습니다.왕후이둥씨 역시 미국 통신회사의 수석대표 직무를 버리고 특구에 몸을 바치려고 합니다.뤄교수님은 마카오대학 법학원 교수입니다.중국 마카오사의 사장도 했던 분입니다.관선생님은 작가이시며 아주 저명한 언론인입니다.조선인민을 홍보하려고 왔습니다.
왼쪽으로부터 뤄웨이젠 교수,양빈의 수석 비서로 임명된 웡융시,랴오닝 법학원 부원장 둥롄파.
웡선생님은 저의 좋은 벗입니다.중국의 개혁개방에서 이 분은 초창기에 조사연구와 서류작성에 참여하였다가 나중에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웡선생님은 조선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이 분이 참여하면 신의주 특구가 중국의 개혁개방이 걸었던 굽은 길을 겆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둥교수님은 랴오닝대학의 법학원 원장으로 저명한 국제법 및 경제법 전문가십니다.
왕뤄 원장님은 도시와 항구 설계 전문가십니다.신의주의 기획과 설계에 참여하실 것입니다.이 분들은 모두 중국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서양에서도 교육을 받은 전문가이며 학자형의 인재들입니다.그리고 차오성리씨는 선전 사구(蛇口)특구 건설이 일인자인데 며칠 지나면 오실 것입니다.우리의 임원은 60% 이상이 박사이고 40%는 석사인데 모두 저와 함께 자신의 일체를 조선인민에게 바치려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같은 점을 찾고 다른 점을 유보’하려고 합니다.더 번복하지 맙시다.저는 조선인민의 아들이며 김장군의 아들입니다.장군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할 것입니다.우리는 조선인민의 감정을 존중합니다.
“관건은 어떻게 외국자본을 신의주로 들어오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외국상인이 호텔에 든 손님이라고 할때 반드시 우리가 만든 음식이 그들의 구미에 맞게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도리입니다. ‘기본법’은 바로 호텔 식당의 메뉴와 같은 것이고 신의주는 호텔 식당과 같은 것입니다.전세계 자본이 다 이 식당으로 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동규 사장은 양빈의 말을 이렇게 받았다.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가 중요하지 식당 이름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양선생님이 명칭에 특별히 민감한데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특구’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삼권’이 있지 않습니까.양선생님은 특구의 행정장관이니 그 권력은 장관급의 권력보다 더 큽니다.부총리도 삼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조선은 저에게 부총리급 노임을 줄 겁니까?”
양빈이 웃으며 하는 말에 양측 대표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허명규 부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양빈 총재께서 특구와 특구행정구 장관을 맡아주시길 고집하고 싶습니다.홍콩의 둥젠화 선생이 구 수반이 되었지만 2기밖에 연임하지 못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양 총재님에게 50년을 맡깁니다.둥젠화선생님은 아마 입법회의를 소집하지 못하겠지요?”
양빈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여러분 잠깐 휴식을 합시다”라고 제의하였다.
잠시 휴식하는 사이 사람들은 휴게실과 2층 바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였다.양빈과 김사장은 휴식시간에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휴식 후 양빈은 회담 전략을 바꾸어 문제를 상부로 올려 보내는 방식을 구사했다.신의주 특구의 구역명칭을 김정일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양빈이 첫 발언을 헀다.
“저도 어떻게 해야 조선인민의 감정을 존중할 것인가 생각하고 있고 또 조선측이 홍콩,마카오 와 같은 특별행정구란 명칭을 접수하기 힘들어 하는 점도 고려하고 있는데.이에 대해 저는 세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첫쨰,조선인민을 존중하고 조선역사를 그들의 민족감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둘쨰,특구는 김정일 장군이 창립한 것이고 세상에 있어 보지 못한 것입니다.바로 이전에 덩샤오핑이 선전특구를 창립하고 개방개혁을 추진하여 ‘뉴스위크’의 표지인물이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당시 그것은 중국에도 있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셋째,투자자의 접수 능력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신의주 특구를 잘 꾸리고 신의주가 세상에서 가장 환영받는 이상적인 투자지역으로 되게 하려면 반드시 투자자들의 이익과 그들이 받아들일수 있는 조건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보건대 신의주 특별 관할구라고 하면 될것 같습니다.세상에 아직 이런 명칭이 없고 또 중국의 홍콩,마카오와도 같지 않으며 외국의 투자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김동규가 말하였다.
“홍콩에 하나의 행정권 밖에 없는데 양총재에겐 세 가지 권력이 있습니다.구역의 존엄과 기구를 생각하여 양총재가 또 하나의 명칭을 제기하였는데,우리 거수로 가결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김장군의 의사이십니까?그렇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빈의 물음에 김사장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아,아니,그런것이 아니고 이건 우리가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장군님이 결정한 것이라면 더 상의할 것 없이 그대로 집행합시다.”
양빈의 이런 표시에 모두들 박수를 쳤다.
양빈은 “김장군님이 결재하시게 합시다.” 라고 한 마디 더 하였다.박수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북한 대표단은 양빈이 특구장관이 되는데 동의하고 삼권까지 부여하면서 특별행정구 명칭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대표는 일찍 “다른 사람이 썼던 명칭은 쓰고 싶지 않다”,”그런 명칭은 낡아 빠졌다”.”식민지 색채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그런 이유들에서 우리는 북한 관리들의 관념과 고충을 엿볼 수 있었다.
북한이 줄곧 신봉해온 것은 ‘주체사상’으로 김일성이 건재할 때 혁명과 건설에서 신봉해 온 지도이론으로서 중국으로 말하면 ‘마도쩌둥 사상’과 같은 것이다.그런데 특별행정구는 중국식 ‘일국양제’에 의한 창조물로서 홍콩과 마카오에 적합한 것이다.
강렬한 민족적 자부심에 젖어 있는 데다 장기간 주체사상이 교양을 받은 북한 관리들은 최고 당국과 김정일의 지시가 없느면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사상’과 ‘경험’을 승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그들이 국제관행에 따르기 극히 힘든 이유의 하나이다.다음으로는 북한이 2002년6월이전에는 북한 노동당과 중앙정부가 한번도 ‘개혁’을 운운하지 않았던데다 7월22일부터 외환과 바꾸어 쓰는 태환권 사용과 배급제를 페기하고,임금수준을 높이고,시민들이 임금에 의해 생활하게 하며,외환제도를 개혁하여 대외무역을 활성화시키고,임금과 물가개혁을 하더라도 북한은 이론상의 대대적인 선전이나 토론을 한 적이 없고 다만 ‘경제 활성화’와 ‘경제발전’이란 슬로건 아래 추진했을 뿐이다.이로 미루어 북한측 대표가 홍콩과 마카오의 ‘특별행정구’란 이름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가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하물며 이 구역명칭 논쟁도 2002년7월 북한이 경제개혁을 실시하기 이전에 발생한 것임에랴.
그러나 양빈 대표단은 그렇지 않았다.그들이 특별행정구 명칭을 고집하는 것은 단지 양빈 특구수반의 지위를 확립(특구수반은 김정일이 임명)하기 위한 것에 앞서 ‘신의주 특별행정구’는 ‘홍콩특별행정구’와 같이 일국양제를 실시할 뿐만 아니라,삼권을 부여하여 홍콩을 초월한다는 점을 전세계에 알리자는 데 있다.
여기서 일국양제란 북한은 사회주의 제도를 실시하고 신의주는 자본주의제도를 실시함을 말한다.특수한 점은 ‘고도의 자치를 하고 행정관리권,입법권,독립적 사법권과 종심권을 향유’,’지위와 제도의 50년 간 불변’,’법에 의한 사유재산 보호’,’거주민의 법률 앞에서는 평등’(국적,혈통,종족,성별,언어,종교,정치 혹은 사상 신앙,교육정도,경제상황 또는 사회적 여건으로 인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다)이다.
결국 외국기업과 자본에서 이곳은 북한의 다른 지역과 달리 ‘ 자본주의 제도’를 실시하고 삼권이 부여되어 있는 ‘특별행정구’란 점을 일목요연하게 알리기 위함이다.구역의 명칭은 바로 ‘금빛 간판’인 것이고 ‘기본법’과 더 불어 찬연히 빛날 것이다.
양측은 구역의 명칭을 두고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2002년3월말 북한 대표단이 선양에 와서 1차 회담을 하기 시작해서 부터 양빈 대표단이 평양에 가서 진행한 제2차 회담,그리고 북한 대표단이 두번째로 네덜란드촌을 방문한 5월 중순이 마지막 하루까지 근 2개월에 걸쳐 논쟁을 해왔지만,여전히 서로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던 구역명칭 협상은 양빈의 “장군님께서 결재하시게 합시다”하는 한 마디로 매듭을 지었다.북한 대표단 성원들도 누구 하나 명확하게 ‘거절’하거나 ‘환영’하는 태도를 밝힐 수 없어 귀국 후 최고당국자에게 보고하기로 하였다.
당시 우리는 김정일이 ‘신의주 특별행정구’명칭에 동의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김정일은 일찍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삼권’과 ‘영주권’에 대한 논장
구역명칭에 대한 논쟁이 “장군님께서 결재하시게 합시다”라고 마무리하자 양측은 모두 힘든 고비를 넘긴 감각이어서 회의분의기가 금방 홀가분해졌다.
북한측 수석대표 김동규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회담을 끌어나갔다.
“양빈 씨가 특구장관이 돼 행정,입법,법원을 관장하십시오.”
솔직한 성격의 양빈은 이미 ‘지역명칭’에 나름대로의 파악이 있었던지 실눈을 지어 웃으며 북한 대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도 사실은 저를 위하여 그러시는 것이지요.김사장님은 기본법에 다른 의견이 없으십니까?”
“삼권을 다시 논해 봅시다. 특구장관은 행정부,입법회의,법원을 책임집니다.특구장관은 조선 최고회의로부터 임명을 받고 중앙정부에 선서해야 합니다.입법회의는 특구의 관련 법률과 법규를 제정합니다.입법회의 의장,법원장,검찰장,경찰국장은 중앙정부의 추천과 특구장관의 지명 및 입법회의 선거를 거쳐 확정됩니다.입법회의는 몇 명의 입법의원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15명이면 어떨까요?중앙이 5명을 임명하고 특구장관이 5명을 임명하고 지역주민이 5명을 선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북한측 박성호의 통역을 들으며 나는 “입법회의 의장,법원장,검찰장,경찰국장은 중앙정부의 추천과 특구장관의 지명,입법회의 선거를 거쳐 선정됩니다”라는 대목에서 그 4개의 중요한 직위는 북한측이 선정하고 파견하곘다는 의도를 명백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빈 대표단 성원들은 내부논의시 이 네 요직은 모두 외국인이 맡고 북한측은 차석에 앉는 것이 좋다고 의견을 모았었다.그들에게는 북한인이 입법회의 의장,검찰장,법원장,경창국장이 되면 많은 투자자들이 겁에 질려 신의주 특구로 올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고.최소한 서방의 대 투자자들이 절대로 수천만 내지 수억 달러를 신의주에 투지하지 않으리란 점이 커다란 우려였다.양빈은 특구장관 이외의 요직에 모두 북한사람이 앉으면 북한 본토와 아무런 차별이 없게 되는 것이며.’특구가 특별치 않고’,’국제적 성격이 없게’ 되면 외자유치가 실패로 돌아가게 될 일이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빈은 우리와의 내부 모임에서 의장과 대법관(법원장)은 유럽인이 가장 적임일 것이라며,공장한 법집행으로 명성이 높은 네덜란드 대법관이나 국제 대법정에서 은퇴한 저명한 법률전문가를 선임하면 좋을 것이고,경찰국장은 서방 법률을 숙지하고 아시아 각국의 법률에도 능통하며 경험이 많아 분쟁을 야기시키지 않을 싱가포르나 홍콩 인사가 적임이라고 하였었다.
양빈의 이런 생각은 사실 하나의 참신한 신의주 특구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당시 양빈은 네 요직에 어떤 인물을 기용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내정한 바가 없었고,양빈 대표단의 어느 누구도 요직 인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그들은 사적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북한측은 입법회의 성원을 15명으로 제안하면서 북한측과 양빈이 각각 5명씩 지명하고 지역주민이 5명을 선거로 뽑자고 하였다.따라서 현지 주민이 선거하는 5명이 입법회의 의원 비례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제1차 입법회의를 소집할 떄는 아직 거주권을 지닌 외국인이 없을 때이므로 현지 주민은 모두 북한사람을 입법의원으로 뽑게 될 것이다.다시 말해 입법회의엔 북한사람이 10명이나 되고,양빈측은 단 5명 밖에 없게 된다.’사회주의의 법제’에 습관된 10명의 북한 의원은 서방식 법률의 실시를 주장하는 양빈측 5명 의원에게는 압도적인 다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가 ‘자본주의 ‘법칙에 적용되는 법률이나 법규를 통과시키는 일이 순조로울 수가 없고 또 보장될 수도 없는것이다.의회는 아마도 매일 한두 가지의 조항을 놓고도 끝없는 논쟁으로 시간만 허송하고 말 것이다.그에 반해 신의주 특구 설립 초기에는 십여 개 심지어는 수십 개의 법률과 법규를 제정하여야 한다.
때문에 ’기본법’의 관철과 실시를 담보할 수 있는 입법의원이 다수를 점해야 한다
양빈의 수석 법률고문 둥롄파 교수는 머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다.그는 북한 대표의 말을 받아 토론하지 않고 중대한 인사 결정과 관련되는 문제는 수석대표 양빈의 말을 들어보자고 하면서 ‘현지주민 5명을 선거’하는 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제1차 입법회의에서 현지주민이 선거하는 정원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입니까? 특구정부 설립 초기엔 외국인이 영주권을 가지지 못하는데 그럼 외국인의 권한은 어떻게 합니까?”
이때 양빈이 그 말꼬리를 이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응당 투자자들의 몫이 있어야 합니다.의회에 반드시 그들의 이익 대표자가 있어야 하지요.이렇게 합시다.장관이 3명 지명하고 조선측이 2명 지명합시다.이렇게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허명규 대표가 다른 의견을 말했다.
“25만 조선 영주민에게 2명뿐이란 건 너무 적습니다.조선측이 3명 ,장관이 2명 지명하도록 합시다.”
양빈이 한발 물러서고 이렇게 대답했다.
“좋습니다.일단은 큰 틀을 이렇게 짜놓고 봅시다.”
입법회의 의원 구성 비율은 이렇게 돌파구가 마련되었고,결국은 북한측이 8명,양빈측이 7명으로 되도록 했다.’우리측’대표들은 서로 얼굴만 쳐댜 볼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양빈이 “일단은 큰 틀을 이렇게 짜놓고 봅시다”라고 한 데서 그들은 필시 ‘후에 다른 기회가 있을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삼권’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북한측 대표는 기본법 제정순서에 관련해 말을 했다.
“입법회의 권한에 관한 문제인데요.특구의 관련 법률과 법규의 제정은 중앙정부에 보고하여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둥롄파 교수가 비교적 상세하게 해석하고 천명했다.
“신의주 특구는 입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입법기관이 제정하는 법률은 중앙정부나 최고권력기구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신의주 특구의 법률은 행정장관이 서명해 효력을 발생시킨 후,중앙정부나 최고입법기관에 신고하면 그뿐입니다.신고는 그 법률의 효력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허명규는 견해를 좀 달리 하였다.
“입법회의에서 통과된 법률은 최고입법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최고입법기관은 신고되어 올라온 결의에 대하여 접수하거나 되돌려 보내 수정할 것을 요구할 권한이 있습니다,”
“물론이지요.”
양빈이 이렇게 대꾸를 하니 둥롄파는 다음 내용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주 특구는 신의주에 맞는 민사법,형사법,절차법,행정법 등 여러 가지 법률규범을 제정할 권한이 있습니다.특구는 자체적으로 입법하여 외국의 정치적 조직이나 단체가 신의주 특구에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양측 대표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입법회의 직능과 의원 정원에 대한 토론은 끝내 의장 인선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대표단이 선양 네덜란드촌에서의 상담,왼쪽으로부터 마닝,김동규,양빈
양빈이 먼저 이 문제를 꺼냈다,
“특구의 국제적 특성을 봐서 의장과 법원장은 외국인,특히 변호사 경험을 지닌 사람을 선임할 것을 희망합니다.의장은 네덜란드 사람이 어떻습니까?예를 들면 국제법 경력자 말입니다.부의장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사람 한 명과 조선측 한 명으로 하면 될것 같습니다.특구에 투자하는 외국 투자자들은 주로 법률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봅니다.때문에 저는 입법회의 인선을 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두고 고려한 것입니다.이 점에서 저는 사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저는 절대 중국에 있는 저의 친인척이나 동창들 한 사람도 특구에 취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사법의 공정성과 행정의 청렴성을 담보할 것입니다.”
김동규가 “우리는 돌아가서 양종재님의 뜻을 보고하겠습니다.다음 문제를 말해봅시다”라고 하니 허명규가 “특구 행정장관의 직능과 권리입니다”라고 하였다.
둥롄파가 화제를 받았다.
“특구 행정장관은 특구를 대표한다.기본법이 규정에 준하여 중앙과 신의주 특구를 책임지게 된다.특구 행정장관은 아래와 같은 직능을 행사하게 된다.
10. 신의주 특구를 지도한다
11. 기본법의 이행과 특구의 기타 법률 및 법규의 이행을 책임진다.
12. 법안에 서명하고 법률을 선포한다.
13.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명령을 선포한다.
14. 각급 정부 관원을 임명.파면한다.
15. 특구 정부를 대표하여 중앙이 수여한 권리에 따라 대외 사무를 취급한다
16. 형사범죄자들에 대한 형벌을 사면하거나 감형해준다
17. 특구 정부를 대표해 관련문서에 서명한다.
18. 특구와 관련되는 기타 사무를 처리한다.
허명규가 물었다.
“삼권에 다른 문제가 없습니까?”
양빈은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누구도 이의를 제거하는 사람이 없으니 “없습니다”라고 시원하게 대답하였다.
마닝이 질문했다.
“특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현지 거주민으로 인정합니까?몇년을 거주해야 영주권을 가질 수 있습니까?”
허명규의 대답은 이러했다. “홍콩은 7년이고 신의주 특구는 10년입니다.”
“10년이면 너무 길지 않습니까?”이렇게 되묻는 마닝이 빙긋이 웃었다.
홍콩기본법과 마카오기본법 제정과 토론에 참여하였던 중국 정부관리 출신의 뤄웨이젠 교수는 관련내용을 상당히 숙지하고 있었다.양빈이 그에게 말을 권했다.
“이 문제는 교수님이 말씀해야 하겠습니다.”
뤄웨이젠은 이렇게 해석했다. “원칙상 국적에 따라 구분하지 않습니다.외국사람은 10년 지나야 거주권을 주고 조선사람은 기한이 없다면 역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양빈이 견해는 이러했다. “지금 외국인이 아직 입주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제한부터 한다면 매우 현명하지 못한 것입니다.기본법엔 외국인에 대한 제한규정을 넣어서는 안됩니다.외국인은 사실 많이 올수록 좋은 것입니다.그들은 자금을 가지고 오는 투자이민인 것입니다.”
허명규가 한마디 거들었다. “외국 투자이민과 기술이민도 일정한 비례가 있어야 합니다.”
“신의주의 25만 명 거주민이 영주권을 가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요는 특구에 오는 투자자이민과 기술이민들의 거주에 먼저 어떤 규제를 하지 말고 발전상황을 보아가며 결정하는 것입니다.”
양빈의 말에 김사장은 찬성을 표했다.
“그렇게 합시다.신의주 특구에 외국인들이 얼마나 올지 아직 미지수입니다.법률적으로 규제를 하지 말고 우선 휼륭한 투자환경을 조성하여 외국인들이 많이 온 다음에 결정합시다.”
뤄웨이젠이 자신의 견해를 폈다. “조선인가 외국인의 거주권 비율은 먼저 정할 필요가 없고 법적으로 제한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그러나 영구 거주민이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영주민이 될수 있느냐는 반드시 명백한 법률규정을 해야 합니다.
이는 특구에 사는 사람,장차 특구에 오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인데 한 부류는 거주민으로서 기왕에 신의주에서 거주한 25만의 조선사람과 미래의 정부가 허가한 사람들이고,다른 한 부류는 비거주민입니다.비거주민은 아래의 몇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1)특구건설에 참여하는 노동자입니다. 이 부류 사람들은 조선인이든 중국인이든 기타 외국인이든 불문합니다.
(2)특구에서 사업하는 직원,기술자입니다.역시 어느 나라 사람이든 불문합니다.
(3)중앙 연락사무소와 특구주재 기구 및 정부 파견요원 역시 현지의 거주민이 아닙니다.
(4)관광객,불법 체류자.친척방문자등 법적 허가없이 체류하는 사람들은 그 체류기간이 10년을 넘더라도 영주민이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특구 정부와 법률의 인가를 받은 사람만이 비로소 영주민이 될수 있습니다.정부는 서류 다른 부류와 상황을 가려서 인가(認可)해야 합니다.특구는 앞으 로 거주민법,이민법을 제정하여 법률로 한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김사장이 찬성을 하였다. “좋습니다.특구가 관련 법률을 제정하게 합시다.”
‘영주민’에 대한 토론은 여기서 일단락을 지었다.회의가 끝난후 우리는 뤄교수에게 농담을 던졌다. “오늘 교수님이 우리들에게 강의를 하셨습니다그려.”
첫날 담판은 순조롭게 진행된 편이다.’구역명칭’은 김정일이 결재하게 하였고 ,’삼권’의 의미 규정도 큰 줄다리기 없이 마무리되었다.제3차 담판은 스타트가 좋은 셈이다.
그 날,양빈은 심기가 무척 좋았다.저녁에 양빈은 네덜란드촌 ‘백조의 호수’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열대 우림홀 안은 등불로 휘황찬란했다.양측 대표들은 서로 술을 권하며 축복의 말들을 나누었다.연회에 초청된 연예인들이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연회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연석이 파한 후는 특이하게 기획된 불꽃놀이 야회가 진행되었다.
‘백조이 호수가’밤하늘에 오색찬연한 불꽃이 휘날렸다.어떤 불덩이는 공중에 높이 날아 올랐다가는 다시 터져 작은 불꽃으로 부셔져 내렸다.병풍모양의 꼬리를 편 공작새를 방불케 하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이 떄 양빈이 한마디 외치니 홀연 호수 맞은편에 한글로 김정일에 대한 불꽃 자막이 나타났다.그 불꽃 자막은 밤하늘에 오래도록 지지 않고 빛을 뿌렸다.북한 대표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양빈이 이런 기발한 구상을 할 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그렇게 짧은 시일에 양빈은 어디서 이렇게 많은 불꽃을 피울 사람들을 불러왔을까?
기본법의 조속한 선포를 희망한 양빈
5월20일오전 9시30분,양측 대표는 회의장에 입장하였다.좌석에 앉아 북한 수석대표 김사장이 먼저 벙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양총재님 엊저녁 불꽃놀이 야회에 감사드립니다.우리는 불꽃자막이 나타날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북한 대표들이 뜨거운 박수로 양빈과 우리측 대표단에 사의를 표했다.
“특구의 명칭에 대하여 투자자들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습니다.엊저녁 야회 후에 숱한 투자자들이 저를 찾아와 특별행정구라는 명칭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단둥 쪽에서도 그런 의견 제시가 있었습니다.단둥과 신의주는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서 또 상호보안의 관계입니다.만약 신의주가 단지 특구에 불과하면 변방무역 밖에 될 것이 없으며 다른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신의주가 일단 특별행정구가 되면 그 쪽도 대응하는 특별한 정책을 만들어 인력,물자,전력과 교통,나아가서는 통관 등 영역에서도 특별취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특구의 명칭은 김장군님의 결재를 존중하겠습니다.만약 김장군님이 결재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신의주 특별행정구’라고 명명하기를 희망합니다.”
양빈이 단둥 사람들의 성원을 곁들여 설명한 자신의 소원과 의도는 마침내 상대방을 감동시켰다.김사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양총재님의 의사를 위에 보고하겠습니다.”
허 부위원장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특구가 경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습니까?”
뤄웨이젠이 대답하였다. “국가 단위로 가입을 요구하지 않는 국제기구는 가입할 수 있습니다.이를 테면 위생,문화,체육,경제 등 기구입니다.참가하면 특구엔 유익한 것이지요.”
“관련 국제기구들이 우리의 가입을 동의하겠습니까?”허명규가 다시 묻자 뤄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특구 건설이 잘 되고 특구의 법제가 국제규범과 일치되면 그들이 우리의 가입을 요청할 것으로 믿습니다.물론 반대하는 국가도 있을것이므로 일정한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양빈이 한 마디 덧붙혔다. “신의주 특구를 설립한다는 건 사실 10중의 9가 정치이고 1이 경제입니다.중요한건 정치입니다.그러므로 중국,미국 ,일본,유럽과 기타 나라들의 태도가 다 같지는 않을 겁니다.”
이에 대한 김사장의 견해는 이러했다.
“중국은 특구 건설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중조의 관계는 피로 맺어진 친선관계이므로 필연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유럽연합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와 유럽연합은 아주 긴밀한 관계입니다.미국은 아마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그들은 1950년에 이미 대 조선 경제제재와 봉쇄정책을 취하였고 전문기구를 두어 조선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미국의 경제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자하러 올 거고 미국 정부도 그들을 통해 조선을 알고자 할 것입니다.”
김사장이 말한 1950년 미국이 제정한 대 북한 경제제재는 미국재무부 외국자산관리국이 기초한 경제제재 규정이다.이 계획은 이미 수차에 걸쳐 수정되었다.최근이 수정은 클린턴 대통령이 1999년9월17일에 대 북한 경제제재를 완화키로 한 것이다.이같은 조치는 북미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중지할 데 관한 북미간의 협약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도 양측은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일본정부의 태도는 그다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일본 상인들은 국내 경제 시장이 안 좋으므로 거액의 자금을 두고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그들은 신의주 특구에 투자하고자 할 것입니다.”
양빈의 말에 이어 김사장이 한 마디 하였다.
“일본 정부는 조선을 적대시 합니다만,우리의 일본에 대한 수출은 대 중국 수출의 2배가 넘습니다.자,아래 문제로 넘어갑시다.”
허 부위원장이 계속 질문하였다.
“화페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양빈이 대답하였다.
“조선측의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호텔과 상점들에선 달러와,엔화,위안화,유로화 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를 쓰고 있다.홍콩달러도 평양에서 대량 유통된다.그러나 북한화페는 외국화폐와 직접 태환하지 못한다.북한은 과거 중국처럼 태환권을 사용해 간접적으로 외국화폐와 태환을 한다.미래의 신의주 특구의 화페는 주로 달러화,위안화,유로화,엔화,캐나다 화폐,호주 화폐 등이 사용될 것이다.북한의 화폐와 직접 바꾸지 못하면 북한의 금융정책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그런 연유로 양빈은 바람따라 돛 달기로 ‘북한측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한 것이다.
허명규가 또 물었다.
“특구의 관세는 얼마입니까?”
양빈의 대답은 간다했다. “면세입니다.”
“특구의 여권은 어떻게 냅니까?”
양빈은 허명규의 물음에 반문으로 대답했다.”이건 아주 큰 문제인데 조선측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특구의 여권은 북한 정부가 발급하도록 하면 정부의 권위에도 손해될 것이므로,이 조항만큼은 반드시 특구 정부가 발급하도록 해야 합니다.조선정부가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대부분 수교하였지만 일본 미국 등 미수교국들이 있는데 그런 나라 사람들도 특구 여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특구 여권은 상업 거래에 편리한 것입니다”
양빈도 한마디 강조하였다.
“신의주 특구 여권은 특구가 발급해야 합니다.”
“중앙 정부가 발급권을 주면 특구는 하자 없이 잘 해야 합니다.그 다음으로는 특구에 왜 구기(區旗)와 구휘(區徽)가 있어야 합니까?”
허명규의 이런 물음에 뤄웨이젠의 대답은 간단했다.
“대외교류에 필요합니다”
허명규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대외교류는 조선국기로도 될 것 아닙니까?”
줄곧 말문을 닫고 있다시피 하던 마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우리 특구와 조선이 국제교류에서 같은 조선국기를 써서는 안 됩니다.”
뤄웨이젠이 한 마디 부언하였다.
“어떤 나라는 조선으로 가지 못하게 하지만 특구로 가는 건 허가합니다.그러므로 조선국기를 쓰면 불편하나 특구 구기를 쓰면 편리합니다.특구 여권과 같은 이치입니다.”
양빈도 한 마디 덧붙였다.
“일본이 이토 회사도 정부의 규제 때문에 조선산 과일,채소,화훼.수산물 등은 수입이 안되지만 특구 산품은 가져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사장은 한 걸음 물러섰다.
“만약 필수적이라면 반드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이건은 우리가 중앙에 보고하겠습니다.”
뤄웨이젠이 말했다. “국제적인 회의에 참가하고 회원이 되려면 표징이 있어야 하고 회기도 필요합니다.여권을 발급하는 목적은 특구 여권 휴대자와 조선 여권 휴대자를 구별하는 것이므로 특구의 휘장이 있어야 합니다.”
“구휘,구기,여권에 대하여 우리가 중앙에 보고할 것입니다.”
김사장의 말이다.
양빈은 다시 면세 부분을 강조하고 나섰다.
“특구는 바로 자유무역구이고 면세구역구이므로 면세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김사장이 이렇게 물었다.
“만약 중앙 정부가 특구의 기와 휘장을 비준한다면 귀측은 어떤 방안이 있습니까?어떤 상징으로 쓰려 합니까?”
양빈은 “진달래꽃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진달래꽃을 쓰자는 생각은 내가 내놓은 것이다.이전에 내가 장백산 지역에 하향하였을때 늘 조선족 친구들로부터 그들이 진달래꽃을 가장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그뿐 아니다.1960년 대에 베이징에서 본 조선국가예술극단의 대형 오페라 ‘꽃파는 처녀’에서도 그 꽃은 혁명의 암호이자 상징이었다.지난 4월 평양에 체류했을 떄,어느날 오찬을 들던 양빈이 특구 휘장은 어떤 꽃으로 하는 것이 좋겠냐고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어떤 사람은 나라꽃이 좋다고 했다.그떄 식당에도 나리꽃이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다.그러나 나는 “진달래꽃이 좋습니다.그것은 조선이 혁명가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나의 말은 사실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정확한 말은 오늘 북한측 수석대표가 해주었다.김사장은 웃으며 이렇게말하였다.
“우리의 국화는 목란꽃입니다.제 생각에는 특구의 기와 휘장에 양빈씨의 사진을 박는 것이 좋을 듯 한데요?”
물론 농담이었다.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양빈은 쑥스러워 하며 “특구의 기와 휘장은 귀측이 결정하십시오”라고 했다.
김사장이 웃음을 거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목란꽃은 우리의 국화입니다만 우리의 최고회의가 그것을 특구의 기와 휘장에 쓰게 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우리는 양총재님의 의사를 가지고 가겠습니다.기본법은 우리가 마주 앉아 토론을 해야 하는데 지금 기본적인 틀은 토론이 되었습니다.남은 문제는 세부적인 토론입니다.
그건 다음 기회에 토론하도록 합시다.”
양빈이 대답했다.
“기본법 토론을 끝내고 정리한 다음 김사장님이 중앙에 드리십시오.6월에 제가 또 들어가겠습니다.그리고 아르헨티나,싱가포르,호주와 홍콩의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함꼐 갈 겁니다.바라건대 6월 제가 조선에 갈 때 기본법이 조선 최고회의에서 통과되었으면 합니다.대외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본법입니다.”
허명규가 한마디 하였다.
“기본법 선포에 앞서 우리는 먼저 특구 개방을 선포해야 하는데 이는 최고 국무회의가 심의하고 마지막으로 최고회의에서 통과된후 선포해야 합니다.”
“대외적으로 기본법 선포는 어느 때가 될 것 같습니까?”
양빈의 이런 물음에 허명구는 이렇게 답하였다.
“아무리 빨라도 아마 서너 달 걸릴 겁니다.먼저 기본법이 통과된 다음에 선포해야 하니까요”
허명규의 예측은 비교적 정확한 것이다.이번 회담이 5월20일인데 신의주 특별행중구 기본법이 공식 통과돼 선포한 것은 9월 23일이었으니 꼭 4개월이 걸린 것이다.
“어느 때쯤 선포가 가능하겠는지 김사장님께서 한번 예측해 보십시오.”
양빈이 재차 기본법 선포 시일을 물었으니 김사장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만들면 기본법이 아니지요.우리 대표단 사람들은 누구도 기본법 선포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그것은 사실 당신들의 행동에 달린것입니다.”
“협정을 체결하면 제가 특구장관이 되는 거지요?”
양빈이 불쑥 내묻는 말에 김사장은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특구 수뇌는 당신이라고 김장군님이 결정한 것 아닙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신의주 특구는 바로 양빈씨가 지도하는 것입니다.당신이 우리를 믿지 못하니 우리는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아니,그게 아닙니다.우린 한집안 식구가 아닙니까?전 바로 특구건설 때문에 조급해서 그럽니다.기본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전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 한마디에 금방 팽팽해졌던 기분이 그만 누르러졌다.우리는 드디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양빈,50 평방킬로미터를 더 요구하다
3일째 회담은 그냥 네덜란드촌 암스테르담 기차역 3층 홀에서 진행되었다.회담에 진입하기 전에 양측 대표들은 2층 홀에 설치된 모래로 만든 신의주 특구의 전경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모형은 북한측이 제공한 82평방킬로미터 면적의 신의주 특구지도에 따라 설계한 것이다.신의주 특구의 압록강 연안은 긴 녹지대였고 시내구역은 완전히 세계적 수준의 현대화한 고층 빌딩지대였고 시내구역은 완전히 세계적 수준의 현대화한 고층 빌딩과 하이테크 구역,별장 구역,공항과 널찍한 8차선 도로,공원처럼 꾸며진 생활구역으로 보는 사람들의 동경을 자아내게 하였다.
북한측 대표들도 눈길을 떼지 못하며 찬탄을 금지 못했다.
양빈이 대표단을 모셔다 구경시키는 것은 특구의 이러한 도시 기획과 아름다운 전경으로 북한측의 특구에 대한 믿음을 더 크게 해주는 목적 이외에도 항구와 향후 그 지역 거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문제 때문이었다.북한측이 제공하는 항구는 3천톤급 화물선밖에 드나들지 못하는데 특구가 필요로 하는 것은 1만 5천톤급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다.우리가 희망하는 바는 주단도까지 끌어들여 항구,창고 및 화학공업용지로 쓰려는 것이다.신의주 특구의 모형 앞에서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압록강의 출해구와 항구 선택의 편이성을 읽을 수 있었다.
항구기획설계 전문가 왕뤄가 모형 앞에서 북한측 대표들에게 항구 건설의 가장 이상적인 지점을 소개하였다.
북한 묘향산에서 항구전문가 황뤄
나는 왕뤄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양빈에게 항구 건설지점의 선택문제를 보고하면서 신의주 특구 기획에서 우선적으로 항구 지점을 선정해야 비로소 설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하는 말을 들었었다.그것은 특별히 전문성이 크고 복합하며 중대한 공사이기때문이다.북한측이 제공한 항구는 수심이 얕은 천수(淺水)항인데 반해 신의주 특구가 결정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만톤급 이상의 화물선이 정박할 수 있는 심수항이다.왕뤄는 일찍 항구부근에 정유공장을 세울 것을 제안하였는데 극서 역시 유조선 부두와 창고에 용지 문제 등과 관련되는 것이다.
양빈은 모두 얼마의 용지가 필요하냐고 왕뤄에게 물었다.왕뤄는 5평방킬로미터면 된다고 대답하였다.
“만약 정유공장의 페기물도 현지 처리하고 여러 가지 화학공장도 함께 건설하려면 용지가 얼마나 더 들어야 하곘습니까?”
양빈이 이 물음에 왕뤄는 웃으면 대답했다.”2배 가량이면 됩니다.”
1997년 4월 북한은 미국국적의 동포 박경윤 여사가 이끄는 금강산국제그룹과 합작하여 주단도와 신도를 포함한 85만 평방 킬로미터의 면세 개방구를 기획하였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나는 이 일을 양빈에게 알려주면서 첫쨰,비록 추진력은 크지 않았지만 북한은 1997년에 이미 ‘개방’을 생각하고 준비했었으며 둘쨰,북한은 주단도를 활용하는데 동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따라서 우리는 기본합의서와 기본법을 설계할 때 주단도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 가지 보충할 점이 있다.양빈 대표단은 새로 참여한 차오성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나의 20년 지기다.그는 중국공산당 선전시위원회 상무위원,사구(蛇口)외자유치국,사구공업구 이사회 부이사장 겸 사장을 역임하였고,초상은행(招商銀行)과 평안보험공사(平安保險公司)를 창설했었다.사구 건설이 총지휘자로서 그는 자신의 청춘과 재능을 모두 사구 특구에 바쳤다.
바로 북한측 대표들이 선양에 와서 제3차 회담을 하던 때 차오성리씨가 자신의 친구 리자화(李家華)를 네덜란드촌으로 데려왔다.리자화는 대 투자자이다.그는 이미 觳牌석유 등을 망라한 국제재단을 만들었고,신의주에 30억 달러를 투자하여 대형 정유공장과 유조선 부두 등을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외국 재단이 최초로 밝힌 이 거대한 투자계획은 양빈을 미칠 듯 기쁘게 하였다.양빈은 초대형 벤츠차로 나와 차오성리가 그 투자자를 모시고 선양의 야경을 구경하게 하였다.그 후 리씨는 9월23일 평양에서 거행된 양빈의 특구장관 선서의식에 참석하였다.
리자화의 투자구상은 양빈이 북한측에 항구와 정유공장 용지 50평방 킬로미터를 추가로 요구할 결심을 굳히게 하였다.
이런 연유로 인해 사흘쨰 회담은 하구선정 문제로 시작되었다.양빈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주단도를 결정할 수 있습니까?부두는 특구에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주단도가 안될 경우 항구는 반드시 심수항을 선택해야 합니다.정유공장은 원유를 들여와야 하므로 항구는 반드시 만톤급 이상 화물선이 정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특구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조선의 미래 경제발전에도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귀측의 화물도 드나들 수 있는 것입니다.”
“국제적인 부두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김사장이 이렇게 수긍하자 양빈은 한걸은 더 밀고 나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국제적인 투자 재벌그릅이 있는 것입니다.
觳牌석유까지 포함하여 신의주에 30억 달러를 투자하여 정유공장과 유조선 부두 및 후속 가공에 필요한 각종 화학공장을 건설할 계획입니다.이 아이템은 우리 특구에 상당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조선의 에너지와 화공제품 공급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김사장이 공감을 표했다
“아주 지당한 말씀입니다.우리는 이 아이템을 대단히 중시하고 또 지지할 것입니다”
“문제는 주단도가 결정되지 않아 항구를 다른 쪽으로 선택해야 하니 토지문제에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양빈의 이 말에 김사장은 확실한 답을 주었다.
“그건 문제 아닙니다.우리는 곧 사람을 배치해서 새 항구가 들어설 지점을 선책하겠습니다.그와 관련된 토지가 대략 얼마나 됩니까?”
“50평방 킬로미터입니다.”
“돌아가서 최고 당국에 보고하여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국제적인 부두와 대형 정유공장은 우리에게도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후 우리는 북한 정부가 대계도(大鷄島)부근에서 50평방 킬로미터의 토지를 우리에게 주기로 하였다는 통보를 받았다.그러니 원래의 82평방 킬로미터에 50평방 킬로미터를 합하여 신의주 특구면적이 추가됐다.심수항을 가진 이 50평방 킬로미터 이 땅은 미래가 특구 건설에 중대한 경제적 의의를 갖는다.미래의 대형 국제해운 항구와 정유공장 화학공장이 모두 이곳에 서게 된다,
양빈은 다른 문제를 내놓았다.
“특구의 거주민 이주 문제도 일찍 손을 써야 합니다.”
김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주비용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토의하지 않았습니까.우리의 의견엔 다른 문제점이 없곘지요?”
“한집안 사람인데 문제가 없고 말고요.”
양빈은 우선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다시 한번 덧붙였다.
“이주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요?먼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건지 아니면 나가지 않은 건지요?”
회의에서 거의 말이 없던 북한측 대표 한 사람이 말헀다.
“남게 되는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남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김사장이 말했다.
“구체적인 숫자는 우리도 아직 통계를 내지 못헀습니다.”
“조선측이 거주민 배치 문제를 연구해주시기 바랍니다.그럼 다음 내일 다시 토론합시다.”
양빈의 의견에 북한 대표가 동의를 표했다.
“좋습니다.내일 기본합의서를 토론할때 다시 논의합시다.”
양빈은 계속 자기가 준비한 의제에 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가급적이면 특구 기획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해야겠는데,우리 대표단원들의 신의주 출입수속을 간소화할 수 없겠는지요?”
“됩니다.그러나 외국인은 안 됩니다.”허명규의 말이다.
양빈이 난색을 표했다.
“우리의 도시기획,항구설계 모두가 세계의 저명한 설계회사와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하는 것이며 그들은 직접 신의주에 가서 시찰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허 부위원장이 해석을 하였다.
“만약 외국인이 먼저 중국에 왔다가 다시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갈 경우 우리는 변경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여권이 있으면 좀 편리하게 됩니다.”
양빈이 감격적인 어조로 말했다.
“단동시는 특구의 설립에 관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14개 연해 개방도시 가운데 유독 단둥시만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제 기회가 오니 그곳 시민들이 더 없이 격동되있습니다.단둥측은 부두를 하나 건설하여 물류를 해결하는데 나서겠답니다.그리고 배로 노동자와 관광객들을 실어 날라 사람들 출입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로 하였습니다.그런데 협의를 체결한 후 중국의 자동차가 신의주에 들어갈 수 있곘는지요?”
지금의 북한 세관은 외국 자동차,화물차가 직접 신의주에 들어가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단 북한측과 운수협정이 되어 있는 회사만 예외이다.유라시아그룹이 평양 농업기지로 수송하는 화물도 반드시 북한의 관련 규정에 따라야 했으므로 공사 진전에 종종 영향을 끼쳐왔다.그 때문에 양빈은 골치가 아팠으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북한측 대표 허명규 부위원장은 “그건 문제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종합적인 합의’에 도달한 제3차 회담
5월12일 부터 23일까지 양측은 주로 기본합의서에 대하여 협상하였다.북한측이 내놓은 기본합의서(토론용)는 모두 6장 54개 조항이었다.’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명의로 작성한 이 합의서의 상대측은 양빈이 ‘네덜란드유라시아무역공사’였다.북한측의 법적인 대표는 김용술이었고 직책은 ‘경협회’위원장이었다.
북한측이 제시한 기본법‘제1장 총칙’에는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위임으로 신의주특구을 설립할 데 관한 협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양빈 대표단이 내놓은 기본합의서 본문이 공식명칭은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네덜란드유라시아국제무역회사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립에 관한 기본합의서’(초안)로 되어 있었다.
이 기본합의서는 장과 절을 나누지 않고 모두 24개 조항으로 되어있다.이 합의서는 서두에 “조선의 경제협력에 관한 인가는 이미 조선 최고권력기구의 승인과 권한수여를 받았고,조선 최고권력기관은 이 합의서가 조선에서 법률적 효력을 가짐에 대하여 인정하였다.”고 밝히고 있다.5월22일 오후,양측은 ‘합의서’의 큰 틀에 대하여 공감대를 형성하였다.이를 축하하여 북한측 대표단은 선양의 묘향산 식당에서 만찬연회를 베풀어 양빈 대표단 전원을 초대하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은 이미 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되였고 2002년 9월24일에 이 결정을 선포하였다.’기본합의서’는 비록 쌍방의 인가를 받았고 조인식을 하였지만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쌍방의 입장을 존중해 필자는 관련된 상세한 조목의 내용을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합의서의 세부에 관한 회담은 3월말부터 9월23일 최종 합의서에 조인하기까지 줄곧 진행되었다.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양측의 ‘기본합의서’회담은 ‘기본법’회담처럼 어렵고 길지 않았으며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었다.
5월23일 회담에서 양빈은 평양 농업기지의 온실 건설의 진척상황을 간단히 소개한 후 이렇게 말했다.
“평양 온실 프로젝트의 계약 중에 전력조항이 없습니다.제가 보건대 귀측이 전력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온실은 전력이 시급히 필요하니 제가 달러를 내고 사겠습니다.”
그러자 김사장이 괘재를 불렀다.
“양총재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양빈은 우리의 현재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고 장군님에게도 더 없이 충성합니다.일부 문제가 생기는 건 다시 보충 협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신의주 특구 개발은 우리 모두와 김장군님의 양빈에 대한 신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의주 특구 개발을 두고 국내외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앞으로 어떤 시끄러움이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하지만 중국 정부는 지지할 것이고 돈독한 조중친선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우리는 아직 공식적으로 사람을 베이징에 보내 특구의 일을 통보하지 않았습니다.아마 좀 시일이 지나면 사람을 파견할 것입니다.여러분 안심하십시오.합의서에 만약 다른 문제가 있으면 협상하여 해결합시다.”
“기본법에도 무슨 문제점이 있으면 계속 이야기해 봅시다.”허부위원장이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다시 한번 장관의 권리에 대해 상세하게 토론해 봅시다.우리는 특구 장관을 50년 간으로 하려고 하는데.입법회에서 확정될 임기를 한번에 5년 간입니다.”
윙융시가 대답했다.
“특구 장관은 조선 최고회의가 임명합니다.입법회가 통과시키는 임기는 5년이지만 연임할 수 있습니다.”
윙융시는 이번 3차 회담부터 양빈 대표단의 성원이 되었다.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부를 졸업한 그는 일찍이 1980년대에 중국공산당 중앙농업정책연구소에서 일했고,80년대 말 공직을 버리고 한 유명한 투자관리회사의 이사장을 역임하기로 하였다.양빈은 그의 경력을 소중히 여겨 회담시 자신의 옆에 앉혔다.그는 마닝과 함께 양빈의 좌우 팔로 불리웠다.그 후 윙씨는 양빈에 의하여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 수석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나는 양빈이 친필로 사인한 제1호 임명장을 보았다.윙씨는 머리가 매우 명석하고 처사가 원활한 지식인이며 또한 대단한 정치적 두뇌와 지략을 구비하고 있는 가볍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윙융시가 말한 후 뤄교수가 자신이 생각을 털어놓았다.
“5년은 짧지 않을까요?외자유치가 갓 시작을 뗀 데다 많은 외국 상인들이 양빈씨의 친구이고 그의 명성과 신의를 보고 오는 것이므로 시간이 긴 것이 좋습니다.10년이 어떨까요?”
양빈은 뤄웨이젠이 자신을 위해 임기를 연장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측의 반대를 받을 것 같아 짐짓 놀람을 나타내며 “10년?”하고 물었다.
그러자 왕후이둥이 즉시 “8년”이라고 고쳤다.
왕후이둥은 미국유학을 한 박사다.미국의 한 다국적회사의 중국주재 수석집행관을 하였는데 지금은 상하이 푸둥의 한 하이테크 회사의 이사장으로 있다.이 사람은 사고가 민첩하고 영어를 능란하게 구사한다.
뤄웨이젠이 “프랑스는 7년인데”라고 하니 윙융시가 북한측에 대고 “조선은 몇 년입니까?”라고 물었다.
허명규는 “5년입니다.”라고 대답하고는 “특구 장관의 자격과 범위는 어떻게 한정합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뤄웨이젠이 신중하게 한 마디 보충했다.
“의회가 통과시킨 결의안을 장관이 서명하여 선포하는 권리가 있으나 장관이 서명을 거부하여 결의안을 의회에 돌려보낼 권한도 있습니다.이 범위에서 장관에게 거부권이 있는 겁니다.”
허명규는 또 물음을 제기했다.
“비상설기구는 설립하지 않습니까?”
뤄웨이젠이 대답하였다.
“설립할 수 있습니다.세게 각 국에 다 있습니다.”
허명규가 또 물었다.
“행정부의 권한은 어떤 것들입니까?”
이에 뤄웨이젠이 이렇게 반문하였다.
“특구 정부를 말하는 것입니까?”
허명규가 “특구 정부와 동등한 것이지요,”라고 대답하니 뤄웨이젠은 이렇게 물었다.
“특구 행정부 장관은 특구의 사무를 책임지며 각 부처의 업무를 조직하고 지도합니다.”
양빈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어느덧 식사시간이 되었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김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문제는 다 조선측이 안을 내십시오.우리는 6월에 평양에 가겠습니다.조선 최고회의가 기본법에 동의 서명하고 효력을 발생시키기 바랍니다.시간을 쟁취해야 특구의 기획과 건설을 하는데 편리합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양측은 회담에서 기본법의 큰 틀을 다 짠 셈이었다.양빈이 “김장군님이 결재하게 합시다.”란 한 마디로 특구의 구역명칭 문제를 조선의 최고 지도자에게 올려보냈고,특구 장관의 삼권 부분에서도 큰 문제를 다 해결하였다.동시에 특구의 땅도 50평방 킬로미터나 더 얻어왔으니 제3차 회담은 승리로 끝냈고,특구의 미래를 위해 좋은 기반을 닦은 것이다.특구의 4개의 요직 즉 입법회 의장,검찰장,법원장과 공안국장 직무는 시종일관 북한측 인사가 담당할 것을 주장하여서,그것만은 다음 번 회담 내용으로 남겨두었다.이 문제는 그들 나름대로 파악이 있었던 바 최소 2개의 적위는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5월24일은 조선 대표단이 선양에 체류하는 마지막 날이었다.양측은 이미 달성한 합의결과에 따라 각자 수정한 기본법 기본합의서를 정리하였다.
북한측 수석대표 김사장의 말을 빌면 “우리 조선 대표단은 선양에 와서 양총재님 및 여러분과 며칠 간 상담하였는데 국가가 우리에게 부여한 권한 내에서 종합적인 합의를 달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북한 대표단은 이번 회담에서 주요한 과업을 완수하였다,즉 신의주 특구 기본법의 기틀과 기본합의서를 완수함으로써 ‘종합적인 합의’를 달성한 것이다.북한측은 또 양빈으로부터 별도의 성과를 얻어냈으니,20여 명의 농업기술 연수생을 네덜란드촌에 보내면 유라시아그룹측이 이들을 교육시켜 주기로 한 것이다.
두 달 남짓한 학습을 거치면 그들 젊은 농업기술자들은 네덜란드의 온실화훼,야채의 포자 배육,양식과 관리기능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