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개요
본문에 앞서서
머리말
불을 훔친
관산포럼
관련 글
관련 포토

 

불을 훔친

제8장 실망스런 평양 제4차 회담

북한 ,신의주 특구 설립을 중국에 공식통보
6월10일 차오성리(喬勝利)가 저명한 투자자 리자화(李家華)와 함께 네덜란드촌을 방문하고 신의주 특구에 투자해 정유공장과 유조선 부두를 건설할 아이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담하였다.만찬 후 우리는 그들이 투숙한 별장으로 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10시30분 양빈이 전화를 걸어 나더러 그들을 모시고 자기가 거주하는 A9로 와 이야기하자고 하였다.양빈은 우리를 만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어제(9일) 막 입수한 소식을 전했다.그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이 북한주재 중국대사를 만나고 싶다는 공식 통지를 보냈는데 마침 대사께서 본국에 가 있어 대신 공사가 외무성으로 가서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담화를 하였다는 것이다.
담화내용은 세 가지로,하나는 북한 정부가 평안북도 신의주에 특구 설립을 준비하는데 중국측이 이를 이해하고 지지해 달라는 것, 둘쨰는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유라시아그룹 총재 양빈씨가 조선의 농업현대화에 기여한 바 북한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를 알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그를 신의주 특구 장관으로 임명한다는 것, 셋째는 중국에서의 양빈의 기업과 자금 및 개인의 안전을 중국 정부가 보장해줄 것을 희망한다는 것 등이다.이에 대한 북한주재 중국공사의 대답은 돌아가서 즉시 본국정부에 보고하겠다는 것이었다.
양빈은 기쁨에 넘쳐 말을 계속했다.
“외자 유치를 가속화해야 합니다.미래의 특구 외자유치를 당신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자금이 있게 되면 특구 건설도 맡아줘야 하겠습니다.관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사구 건설이 총 지휘를 하셨다면서요?”
차오성리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다 지나간 일입니다.”
양빈은 그냥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한 마디 더 토해냈다.
“자,신의주 건설의 총지휘를 당신이 맡는 걸로 결정합시다.투자유치국의 국장까지 맡으시고요,수고해주십시오,”
쟈오성리는 가부간 표시없이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양빈은 곁에 있는 나에게도 한 마디 했다.
“관선생님은 앞으로 특구의 신문을 꾸리며 매스컴을 맡아주십시오.”
나는 마지 못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야 뭐 이미 나이가 많은데요.”
양빈은 고개를 차오성리에게로 돌려 물음을 던졌다.
“차오선생님은 신의주 특구를 어떻게 보십니까?동북아 번영에 유익하리라고 보시는지요?”
차오성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선이 개방하여 신의주 특구를 한다는 것은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유익한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이는 ‘평화와 발전의 주제’에도 부합되는 것입니다.”
양빈은 고개를 끄덕이어 공감을 표했다.
“자당한 말씀입니다.한 사람이 평생에 이런 대사를 한 가지 한다면 괜찮은 것이지요!특구는 저 양빈 한 사람의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것입니다.제가 바라는 바는 역시 형제들이 특구에 와서 돈을 좀 벌어 아래 세대 아이들이 더 이상 먹고 입는 일을 걱정하지 않고 출국하여 유학하는 비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관선생님도 자신의 청빈한 후반생을 두고 우려할 필요가 없게될 것입니다.”
양빈의 말은 나로 항금 내심 감격하게 하였다.문인들은 흔히 몇 마디 자신에게 관심을 나타내주는 말이면 그만 만족해버리는 것이다.
6월11일 마닝,웡융시,왕뤄,둥롄파 등이 양빈의 초청으로 선양 네덜란드촌에 왔다.양빈은 재차 그들에게 북한 정부가 북한주재 중국공사를 만난 이야기를 하였다.소개를 듣고 난 그들은 모두 기뻐하며 중국정부는 꼭 신의주 특구를 지지할 것이고 북한의 ‘개방’은 좋은 일이라고들 하였다.

북한 묘향산에서 차오성리와 필자
회의에서 윙융시는 ‘양빈 대표단’성원들이 의식을 통일하여 일관성 있게 외부에 대응할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조선 정부는 이미 외교적 경로로 중국 정부에 공식 통보하였습니다.신의주 특구의 일은 점차 명확해지고 공개화될 겁니다.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언행에 특별히 신중해야 합니다.우선 여기있는 사람들이 중국과 조선에 그 어떤 손상이 되는 일을 하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
윙융시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신의주 특구에 대해 문의할 겁니다.이에대한 대답은 문제입니다.우리들이 각기 다른 소리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대답을 통일시키는 데는 여섯 가지 준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특구가 어떤 것인가?그것은 조선 정부가 신의주에 설립하는 세계관행에 따르는 국제적인 자유무역구이며,금융 물류 하이테크 가공 부동산관리와 관광을 망라한 특구다.
둘쨰,신의주 특구를 어떻게 보느냐?검을 녹여서 연장을 만들듯이 평화를 위한 기여이고 개혁개방을 하는 좋은 일이다.장차 중국의 경제,특히 동북지역의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이끌어준 것이다.
셋째,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특구 설립은 조선의 권리이고 네덜란드회사와 조선측이 합작하는 것이며 김정일 장군이 결정하고 양빈을 선택한 것이다.
넷쨰,양빈은 어떤 사람인가?(1)그는 네덜란드의 고전농업을 중국에 소개하였고 중국의 농업현대화에 기여하였다(2)김정일이 상하이를 방문하여 그곳에 저너럴 모터스 자동차공장과 온실농업을 둘러볼 때 양빈을 찾아서 평양에 와 현대농업의 본보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양빈은 지금 조선의 산지,농경지,수지(水地)의 비례가 7:2:1이므로 농업을 잘 하려면 반드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하여 과수나무 재배와 양식업을 중시해야 한다고 조언하여 조선측의 신임을 얻었다.(3)조선의 개방은 남으로 개성,북으로는 신의주다.양빈은 신의주를 세계적인 공원으로 건설하려고 한다.(4)양빈은 경제에 열중하고 성공을 추구하며 분투를 즐기는 성격으로 어려울수록 더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다.(5)양빈은 정치를 즐기지 않고 그 어떤 대국의 배경도 없다.정치배경도 없고 아무런 정치색채도 없다.양빈은 중국 정부를 믿고 중공중앙은 성숙된 지도집단으로서 신의주 특구의 개방을 지지할것이라고 믿는다.이는 ‘평화와 발전의 주제’에 부합되는 것이다.(6)양빈은 돈이 얼마나 있는가?그는 앉은 자리에서 돈을 만들줄 아는 사람이다.
다섯째,양빈은 무엇을 하려고 당신들을 청했는가? 우리는 각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인데 양빈의 임시로 초청하여 주로 ‘기본법’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여섯째,조선측이 네덜란드촌에 와서 무엇을 하였는가?‘기본법’회담을 하였다.조선측이 신의주 특구를 설립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우리의 태도는 ‘조중 간의 깨뜨릴 수 없는 친선’을 존중하는 것이다.중국은 이 일에 호감을 갖고 지지한다.이 일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그리고 아시아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와 벌전에 이롭다.
총체적으로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사실대로 말하고 대로(大路)를 걷는 것이다.
신의주 특구 회담에 임한 우리측 대표들이 모두 북한을 도와 개혁개방을 추진시키고 이 거사로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이롭게 하고 중조 우의에 조그만 힘이라도 이바지하자는 공동한 희망을 품은 것만은 사실이다.

압록강을 건넌 후의 이야기
2002년6월18일,호주의 한 포도농장 주인이며 포도주공장주인인 윌슨이 선양에 도착하였다.그는 양빈의 소개를 듣고 평양교외에 포도농장과 포도주공장을 차리려고 온 것이다.이튿날 그는 양빈 등을 따라 항공편으로 평양에 가게 된다.나중에 이야기이지만 나는 평양에서 포도지배기지와 포도공장 입지선정차 윌슨을 동반해 평양과 만포 등 지역을 두 번 시찰했다.
6월19일,나는 양빈의 두 번째 고모부 왕스푸(王時福,난징학의 지리학부 교수),왕뤄,양다융,추이양 그리고 양빈의 밥을 짓는 두 아가씨(네덜란드촌에 있을 때 나는 여러 번 그들이 해주는 밥과 요리를 먹었었다.맛이 아주 좋았고 색상,향기,맛이 모두 좋아 ‘양빈 대표단’ 성원들의 칭찬을 받았다.그들은 양빈이 직접 양성한 제자들이었다)등과 함께 아침 8시경에 선양을 떠났다.
우리는 선양-단동행 기차를 타고 점심때 단둥시에 도착하였다.4월에 평양으로 갈 때는 신의주를 거쳐 갔는데 230킬로미터의 거리를 장장 6시간이나 달렸다.그런데다 신의주 세관 변경 검사소에서 ‘컴퓨터 디스켓’때문에 시달림을 받느라 근 두 시간을 지체하였다.비록 광천수는 가지고 갔지만 식품을 가지고 가지 않아 배에서 꼬륵꼬륵 소리가 났었다.이번엔 그때의 경험을 되새겨 단둥에서 배부르게 먹고도 광천수와 음료,찐빵,삶은 쇠고기,볶음 반찬,밥 등 음식을 장만해가지고 떠났다.
승용차가 압록강 대교를 지날 떄는 바로 초여름의 정오였다.차안의 온도가 아주 높아 차창을 다 열어놓자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들어 기분이 상쾌했다.압록강에는 유람선들이 오갔다.차가 압록강을 넘어 대안에 이르니 바로 북한측의 변경 검사소 울타리 안이었다.올타리 안엔 많은 승용차와 화물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거기서 또 그 변방군 소령과 만났다.옛 친구를 만난 나는 그에게 ‘중화’표 담배를 권하고 함께 연기를 토해냈다.이번엔 북한 외무성 관리가 미리 대기하고 있어서 변경검사를 아주 순조롭게 마쳤다.
우리의 승용차 두 대는 흔들거리며 남신의주를 지나고 또 흔들거리며 풍서(豊西),연용천(沿龍川),오봉(五峰)리를 지나 곧장 정주(定州)로 달렸다.연도의 논은 이미 모내기가 끝난 때라 푸른색으로 이어져 있었다.산비탈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옥수수는 키가 한자나 되게 자라 있었는데 튼튼하지 못해 가드다란 대가 바람에 맥없이 흔들렸다.
북한은 구릉이 많고 토지가 척박해 비료를 대량으로 주어야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는데 비료 생산량이 부족하여 농민들의 수요량을 충족시키지 못한다.차가 한 구릉지를 넘을 떄 나는 왜 산비탈에 대량의 과수나무를 심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북한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의 대답은 농촌이 농업생산합작사를 하는 집단성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3년 수재’를 겪은 후 지금 바야흐로 식량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므로 과수나무를 심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좋은 품종의 과수나무 묘목도 없고 비료도 없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수나무는 심어도 최저 2-3년이 걸려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동안에 먹을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나는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들은 ‘새는 댐에 장마를 만난격’이어서 급선무는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 정부는 이미 구릉지대에 과수나무와 야채를 심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었고 이미 조선원예총사에 지령을 내려 외국상인가 이 방면의 협력에 관해 협상을 하게 하였다.그들은 장차 북한이 토지와 인력을 대고 외국 상인이 자금과 기술을 제공해 전면적인 합작을 하게 될 것이다.양빈은 금번에 초청한 호주의 농장주 윌슨이 바로 평양에 포도재배 아이템 시찰가 가는 것이고,멀지 않아 평양에 도착할 아르헨티나의 농업기업가도 조선원예총사와의 협력건으로 오는 것이다.
우리의 승용차는 정주 백상루(百祥樓)를 지나 청천강 대교를 넘어 평안남도에 들어섰다.그때는 이미 절반쯤 길을 달린 우리는 길 옆의 한 자그마한 정차 곁에 차를 세웠다.북한 친구들은 잠시 휴식하라면서 나무숲으로 가서 융변을 보라고 하였다.
때는 오후 4시가 넘어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지만 초여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부근의 초등학교가 금방 하학한 모양이다.붉은 넥타이를 맨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각기 자기들이 마을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일찍 평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차에서 식품들을 꺼내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하였다.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중국사람임을 알자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더니 우리가 음식물들을 들고 가까이 다가가자 확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우리는 수차례 시도하였지만 누구도 음식물을 아이들의 손에 쥐어 주지 못하였다.하는 수 없이 음식물을 외무성이 보내온 ‘안내원’에게 주어 그들더러 학생에게 나눠주라고 하였다.안내원 두 사람이 음식물을 받아들고 작은 정자에 가서 햇볕을 쪼이고 있던 몇몇 노인들께 드렸다.그 노인들은 부근에 사는 분들인데 여기 정자에 모여 한가롭게 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그러나 그들은 먼저 비닐주머니에 담은 찐빵이며 쇠고기며 볶음 반찬이며 쌀밥을 꺼내먹으려 하지 않았다.그들의 의심을 해소하고자 내가 먼저 찐빵 하나를 들어 먹기 시작하였다.’안내원’과 운전기사도 하나씩 먹었다.그러자 노인들은 너무나도 바짝 마른 손으로 빼앗듯 찐빵을 부리나케 먹기 시작하였다.그 몇몇 노인은 순식간에 찐빵과 쇠고리,볶음반찬.쌀밥을 깨끗이 먹어버렸다.
그들은 마치 굶주린 호랑이와 같이 음식물을 다 먹어버렸다.우리는 또 사람마다 광천수를 한 병씩 드렸다.북한은 지금 우리가 옛날에 겪었던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그 고난을 겪었던 우리는 기아가 어떤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어 북한 형제들을 심심히 동정했다.
저녁 7시경,우리 일행은 마침내 평양시 구역에 들어섰다.화려한 등불로 밝혀진 평양 거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비록 전력이 크게 부족하였지만 주요 거리와 빌딩들은 등불로 휘황하였다.초여름 저녁바람곁에 우리는 대동강 연안을 따라 떠난 지 두 달이 되는 모란봉국빈관에 도착하였다.
양빈,리강,스쥔,저유샹,류뎬후이와 호주인 윌슨은 오전에 이미 항공편으로 평양에 도착하여 모란봉국빈관에 행장을 풀었다.양빈은 우리가 저녁식사 전에 도착하였다고 기뻐하였다.저녁에 양각도호텔 카지노에 가려던 참에 우리가 도착하니 함꼐 우리들에게 “식사 후 잠시 휴식을 하고 함께 양각도로 갑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양빈이 도박 생각에 손이 간지러워 그러는 줄 알고 웃었다.양빈은 나를 보며 말했다.
“관선생님이 곁에 계시기만 하면 저는 판마다 꼭 이길겁니다.”
그렇기도 했다.4월에 평양에 왔을 때 내가 수차 그와 함께 양각도에 갔었는데 번번이 그가 이겼었다.평양을 떠날때 계산하니 8만 달러나 땄던 것이다.
6월20일 오후 10시 무렵,마닝 왕후이둥 차오성리,리수 ,둥롄파,뤄웨이젠 등은 항공편으로 순안국제공항에 내렸다.양빈 대표단 전원이 평양에 도착한 것이다.우리는 즉시 제4차 회담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혁명전통교육을 받고 회담 시작
6월21일 오전,양빈 리강 거셴민 왕위민 등 유라사아그룹의 사람들은 감사장 등의 동반하에 화성동 평양-유라시아 합영회사에 가서 그 곳에 설치된 농업온실기지를 시찰하였다.9월9일은 북한의 건국기념일이다,북한측은 유리온실이 건국일 전에 준공되기를 희망했다.그러나 온실의 일부 실비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하여 공사 진척이 좀 늦어졌다.이에 조급해지니 합작파트너 조선원예총회사 김동규 사장은 양빈이 온 기회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서둘렀다.
우리측 일부 사람들은 주체사상탑과 조중친선탑을 견학하러 갔다.주체사상탑은 김일성주석이 제기한 주체사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이 탑은 대동강 남안에 자리잡고 있었다.능라교로부터 옥규고를 지나 대동교에 이르는 구건에 동서로 쭉 뻗어있는 주체사상 거리가 이 지역을 하나의 긴 띠 형태로 잘라서 주체사상탑 범위에 넣고 있다.심여 개 계단을 오르면 면적이 수천평방미터가 되는,동시에 수만 명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이다.건축은 모두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장업한 것이 특징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체사상탑의 정상에 올랐다.거기에 올라서니 평양시가 한 눈에 다 안겨왔다.발 아래는 대동강이었다 모란봉국빈관과 능라도의 ‘5.1체육장’도 보였다.지난 4월 26일 바로 거기서 김정일이 양빈과 우리 전체 성원을 초청해서 ‘아리랑 축제’의 리허설 장면을 구경하도록 하였다.주체사상탑 상대편은 김일성광장으로 4월25일 김정일이 열병을 한 곳이다.서쪽으로 는 강의 중심에 높은 빌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양각도호텔이다.

평양 주체사상 탑 앞에서의 양빈대표단 추이양 변호사,양다융 변호사,왕뤄와 재일 동포 중학생들
주체사상탑에서 내려온 우리는 차를 달려 대동강을 지나고 개선문을 지나 조중친선탑(중국인민지원군 열사 기념탑)에 도착하였다.여기서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이 그리 멀지 않다.
듣는 얘기에 이 탑은 총 1025개의 석돌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중국인민지원군이 1950년10월25일에 전쟁에 참전하였다는것은 가리킨다. 그해 우의탑은 건설방안은 김일성과 주은래가 친히 검토하고 작성한것이다. 두나라의 령도자들은 그시절에 얼마나 영광스럽고 친한 우의를 가겼는가! 정말 많을 추억을 가지게된다.
여기는 네모난 공원이다.푸른 송백들이 드리운 그늘 밑으로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바로 탑 밑에 이른다.탑안에 들어가면 사방벽은 북한 예술가들이 그린 대형 벽화인데 시기별로 중조 항일용사람들이 함께 백두산에서 일본침략자들과 싸운 내용,지원군이 압록강을 넘어 북한인민과 함께 작전한 내용,북한의 어머니가 지원군의 물자공급을 도운 이야기,중국인민지원군이 북한의 전후 복구건설을 도운 내용들로 그려저 있었다
탑내 대청의 중앙에는 극히 정교하게 만든 나무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그 위에 놓인 큰 방명록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삼천리 강산에 선혈을 뿌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희생된 지원군 고급 장성들의 이름이 있었는가 하면,각급 지휘자와 이름난 열사들의 이름과 직무도 젹혀 있었다.유감스러운 것은 많은 열사들에 부군장이요,군 부정위요,사단이요,연대요,
대대요 하는 직무는 밝혀져 있엇지만 성명이 없는 것들이 많았다.그 당시 전쟁에서 희생된 중국인민 지원군 최고위급 장교는 라샹(李湘)이라는 군단장이었다. 열사 인명부에는 마오쩌둥주석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그리고 여러 전투영웅들의 이름도 있었다.
21일 오후,조선측은 양빈가 그의 대표단 일행 및 호주 손님들을 안내하여 대동강을 유람시켰다.
대동강은 한반도 동부의 낭림(狼林)산맥에서 발원하여 금성호(金城湖)를 흘러 덕천(德川)을 거쳐 서쪽으로 용암(龍岩)리에 이르러서 순천(順川)을 경유해 남으로 꺾어 곧게 평양에 이른다.다른 한줄기인 보통강(普通江)은 평안남도 천연(泉沿)리,오금(梧琴)리,봉수산(烽燧山)일대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흘러 평양시에 이르는데 두로도(頭老島)에서 대동강과 합류한다.
우리는 걸어서 모란봉국빈관까지 내려갔다.국빈관 대문 입구의 길 옆이 바로 푸른 물이 출렁이는 대동강이었도 유람선 부두가 그곳에 있었다.여기 유람선은 시민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국제 우호인사들과 귀빈들만 사용하게 돼있다.
유람선은 대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나아갔다.옥규교를 지나니 양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이날은 마침 평양의 명절이어서 전통복장을 치려 입은 여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강변에서 놀고 있었고 많은 소형 보트들이 강 위에 떠 있었다.강의 복판엔 두개의 큰 분수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강을 따라 흐르며 우리는 오전에 갔던 주체사상탑을 보았고 양각도를 스쳐 지나 곧 보통강과 대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이르렀다.유람선은 만경대(萬景臺) 나루에 이르러 정박하였다.그곳엔 이미 우리의 자동차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도로 양쪽 만경봉에 속하는 산비탈엔 푸른 나무가 무성했고 우거진 송백림에선 싱그러운 솔 향기가 풍겨왔다.따사로운 햇볕아래 우리는 경건한 걸음으로 김일성 주석의 고향집으로 걸어갔다.
집안의 흰 벽에는 김일성의 조부모와 부모의 큰 폭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양빈 등은 김사장이 하는 대로 김일성의 조부모와 부모에게 생화를 현화하였다.거실 맞은편은 농기구 등을 놓은 나지막한 초가였다.거기엔 아직도 옛날 노인들이 쓰던 여러 가지 농기구 놓여 있었다.
양빈과 호주의 손님 윌슨은 해설자의 말을 들으면서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그들은 김일성의 고향집 울안과 대문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모란봉국빈관에 돌아온 우리는 흥미진진하게 담론하였다.오늘은 평양에서 ‘먼저 혁명전통교욱을 받고’ 후에 회담을 한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4개 요직에 대한 치열한 논쟁
23일 오후 10시,평양문화궁 3층 회의실에서 제4차 회담이 열렸다.
북한측 대표단장 김동규가 먼저 인사를 했다.우리는 ‘먼저 혁명전통교육을 받고 후에 회담한다’고 어제 한 농담을 떠올리며 미소로 화답했다.
이어 김동규는 양빈에게 한 마디 건넸다.
“우리는 평양 유리온실을 9월9일 건국절과 김장군님에게 헌납하는 선물 공사로 하려고 합니다.이 자리에 앉으신 양 총재님과 윌슨 이사장님,마 이사장님 그리고 여러분,여러 차례의 담판을 거쳐 우리는 이미 한 집안 식구가 되었는데 이번엔 성공하기 바랍니다.오늘은 양 총재님의 생각부터 들어봅시다.”
양빈은 먼저 온실문제에 대답했다.
“양광온실은 아주 성공적이고 유리온실도 진전이 괜찮습니다.저는 조선인민의 야채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지나간 7개월을 돌이켜 보면 평양의 기후와 공사 진전도 아주 이상적입니다.그것은 비록 하나의 본보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조선인민에게 이렇게 하면 겨울철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하늘만 믿고 사는 관념을 타파해야 하며,이렇게 해야 조선의 미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향후 100만 무의 하우스 온실을 짓게 되면 조신인민의 겨우철 야채는 해결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많은 군인들을 보내 온실건설을 쾌속 추진시켜 주신 김장군님에게 감사드립니다.지금 토마토가 이미 열렸고 오이도 달렸습니다.참외도 맺혔고요.그러니 특구 회담도 결실을 맞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이 풍작의 과실은 응당 여러분이 함께 나눠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김사장은 양빈처럼 그렇게 시적 정서에 부풀지 않았다.
“법률문제는 여러분이 일치한 합의를 가져오기 바랍니다.입법회 의장,법원장,경찰국장 임명문제는 아직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우리의 의견은 조선측이 추천하고 입법회가 임명하는 것입니다.귀측은 외국인이 담임하게 하는 주장이지요.우리는 특구 장관 아래의 관원은 특구 거주민 혹은 우리 내국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렇게 하는 것이 국제 자본유치에 장애가 되지는 않곘지요?특구의 총책임자가 외국인이니 입법,법원,경찰과 검찰을 우리 사람이 맡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을것입니다.유럽사장,싱가포르 사람이 이런 직무를 맡으면 경험은 있지만 현지실정을 모르기 때문에 관리를 할 수 없습니다.홍콩과 마카오의 장관들 역시 현지 사람들 아닙니까?이런 몇 가지 면을 고려해서 그래도 우리가 추천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이견이 있으면 제기해주십시오.”
양빈이 대답하였다.
“이 문제는 이미 수차 이야기 되었습니다.목적은 바로 특구를 위한다는 한 가지 입니다.조선인으로 하여금 특구의 중요 직무를 담당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외국사람이 맡게 함으로써 나진 선봉에서와 같은 그런 실패가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목적은 외국인이 돈을 가지고 와서 투자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우리도 사실 부득이한 상황에서 이런 요구를 제기하는 것입니다.외국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지요.가령 경찰이 외국에서 정해온 사람이고 그 아래 관원을 대부분 조선사람들이 맡게 한다면 그들도 특구가 조선의 기타 지방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것입니다.
외국인이 몇개의 주요 직무를 맡으면 국외에 좋은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것 입니다.우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기업은 이익을 추구하여 특구로 오는 것입니다.특구가 그들의 욕망을 맞춰줘야 합니다. 투자자는 고양이와도 같아서 비린내를 맡게 해야 됩니다.그런데 우리가 고기 곁에다 고춧가루를 쳐놓고 뱃속에도 고춧가루를 넣어두면 고양이가 질겁하여 오지 않습니다.김
위원장님은 국외에 많이 다녀서 밖의 일을 잘 아시지요.그러나 세계 인민
은 조선의 진실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데다 적대세력들이 조선의 얼굴에 먹칠을 하여 일본과 미국의 투자자들이 감히 오지 못합니다.누구를 그 벼
슬자리에 않히겠냐만 생각하지 맙시다.요는 누가 문제를 해결할수 있느냐 입니다.사업을 하는것 아닙니까?만약 5년후 우리가 하는것이 안되면 조선측은 저의 직무를 해임할수 있지 않습니까?유리온실도 그렇지요.우리가 먼저 6헥타르 본보기 공사만 만들었는데 조선측은 지금 그 전력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어떻게 합니까?전 종일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양광온실입니다.비로소 온실 채소재배문제가 해결된것 입니다.
투자자는 흡사 시집가는 처녀와도 같아 시집가기 전에 조건을 내놓습니
다.
그러나 일단 시집을 가서 신방에 들고 아이를 하나 낳으면 그만 매여서 도망가지 못합니다.저는 선양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잘되고 못된것은 말하지 말고 저는 무슨일이 있어도 계속해야 합니다.저는 네덜란드촌을 메고는 어디도 가지못합니다.며느리를 맞아들이려면 처녀의 큰오빠가 어떤가,작은오빠가 어떤가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중요한것은 신부를 데려오는 것입니다.”
허명규가 반론을 폈다.
“외국 상인들은 기본법을 보고 투자하는것이지 누가 장관인가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것이 아닙니다.중요한것은 기본법이고 법률입니다.투자환경
의 핵심이 법률입니다.우리는 기본법을 조속히 선포하기에 노력할것입니다”
양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본법에는 누가 장관을 맡는다는 점을 명기하지 맙시다.저도 지금 조
사연구를 하고 있는데 외국의 공안 법규는 조선의 것과 완전히 달라서 재
산침해 죄가 대부분입니다.납치와 행패를 부려 시장을 독점하는것은 흔히
회사명목으로 나타납니다.이런것들이 정부의 이익을 근본적으로 침해합니다.
지금 조선측 경찰은 이런것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예를 들면 가짜수표,
가짜 신용장,은행금융사기죄 등입니다.이런 복잡한 경제범죄 활동을 취급
하려면 반드시 시장경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와서 해야 합니다.그사람
들이 와서 그런 요직을 담임하게 해야 합니다.입법회의는 하나의 양날칼
입니다.경찰국,검찰원이 이런 양날칼을 쥐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취급을
잘 하지 못하면 그 영향이 한사람,한사건에 그치는것이 아니고 전반 특
구의 이미지에 미치고 특구의 미래발전에 미칩니다.”
허명규가 또 해석을 가했다.
“부문 지도자는 조선사람이 담임하고 아래에 외국인을 들수도 있지 않습
니까.우리는 법원,경찰,검찰원은 응당 우리가 담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구 장관이 그들을 관리하고 감독하수 있지 않습니까?만약 나진 선봉을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그건 그곳의 장관 책임입니다.신의주는 외국인 양빈이 담임하지 않습니까?삼권이 있으니 얼마든지 아래를 관할할수 있습니다.”
양빈의 ‘고양이론’도 ‘시집가는 처녀’비유도 다 북한측을 움직이지 못하니 웡융시가 나섰다.그는 시작을 바꾸어서 우리측의 견해를 풀었다.
“우리에게 5년내지 10년의 과도기를 줄수 있습니까?배구팀을 롱구팀으로
고쳐 만드는 데는 시간이 소요됩니다.우리가 전세계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시스템이 무엇일까 하고 늘 생각을 해보는데 가장 전형적인 것은 해상의 기선입니다.기선 위엔 단 한명의 선장이 있을 뿐이고 기사나 기관장은 모두 선장의 지휘에 복종해야 합니다.그것은 권력이 최고도로 집중된 일원적인 지도체계입니다.만약 그렇지 않고 기사는 이등 항해사의 말을 듣고,기관장은 이등 향해사의 말을 들으면 배는 전진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사고를 치지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다시 경찰국장의 예를 들어봅시다.그가 상대하는것은 전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자유무역구입니다.국제상의 마약밀수조직과 깡패조직,상업사기 집단,컴퓨터 범죄집단....이들을 두고 세계여러 나라의 정부와 경찰국이 머리를 앓고 있습니다.우리의 국장이 이런 시끄러운 문제들을 취급하려면 경험이 모자랍니다.그러므로 국외에서 초빙해 드려오는것이 그 방법입니다.하지만 역시 위험은 있는것입니다.전부 하급관리가 취급하게 하는것 역시 극히 위험한 것입니다.다른 장관의 경우를 놓고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그래서 저는 우리에게 과도기를 주어서 한동안 우리가 거기에 익숙한 사람들을 선임해 쓰게 하는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합니다.그 면의 법률적인 것들을 익숙히 알고 능력에 있으며 됨됨이가 성실한 사람들을 선임하자는 것입니다.”
“양빈씨가 할 일은 국장들이 자기의 직무를 충실히 집행하게 하느것이고
하나는 하루 속히 조선측 사람들을 양성하여 그 사람들을 대체하게 하는
것입니다.”
웡씨는 사실 중간노선을 걷는 것이었다.한쪽으로는 양빈이 마음놓고 하게 하면서 다른 일면으로는 북한사람들을 속달시켜 대체할수 있게 하자는 것
이다.하지만 이런 건의도 북한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했다.
허명규가 불만을 토했다.
“웡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조선사람들이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까?”
양빈의 수석고문 웡융시, 전에 조자양의 막료이기도 하다.이것은 사실 오해였다.웡융시는 일찍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부를 졸업했고 80년대초 30여세 때 중국공산당의 차관급 간부로 일했었다.그는 외국인과의 회담에
서 실례를 할 사람이 아니다.웡융시이 아니라 여기 양빈대표단 성원들 모
두가 자기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고 저서를 써낸 사람들로서 독자적으로 한 부분을 훌륭하게 감당할수 있는 사람들이며 또 적지않은 사람들은 국가
기관에서 사장(司长),국장(局长)직무나 사장,국장에 상당한 직무를 담당하였던 사람들이다.그들은 훌륭한 애국주의와 국제주의교육을 받은 사람
들이므로 결코 북한 관리들을 얕잡아보는 의식을 가지거나 그런 언행을 할
수 없다.
오해를 해소할 의향에서 웡씨는 진일보의 해석을 가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저의 말은 경찰국장 만이 아니라 신의주의 간부들이 그런 전환이 있어야 할것이라는 뜻입니다.이전 50년간 익숙해진 경험에서 익숙하지 못한 사업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시간이 소요된다는 말
입니다.그래서 조선측이 우리 특구에 하나의 과도기를 주었으면 하는 것입
니다.조선은 일부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정해서 다른 국의 국장을 맡길수
있습니다.사실은 저도 과거 이런 일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적용하기가 굉
장히 어렵습니다.”
북한대표 계승해 부위원장이 계속하여 말하였다.
“우리도 좋은 모델을 만들자고 합니다.우리 역시 귀측의 입장에서 고려해
봤는데 귀측의 의견은 가히 이해할수 있는 것입니다.

한 때 중앙정부 관리였으며 전 중공 총서기 자오즈양의 측근이었던 웡융시
우리나라 사람들도 신의주에 특구를 설립한다고 하니 깜짝 놀라는 사람
들이 많습니다.세계 다른 나라의 반응도 들어보았습니다.당신들 중국의 특
구에 외국사람이 장관을 합니까?우리 김장군님은 양빈씨를 믿고 우리 신의주 특구의 장관을 담임하게 하십니다.하지만 당신들은 우리 체면을 봐줘야 할
것 아닙니까? 법률을 선포하여 특구 장관과 주요한 관원이 다 외국인임을 알게 되면 우리 국내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조소하겠습니까?때문에 우리는 입법,사법,경찰은 반드시 우리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계 부위원장의 말은 북한측 대표들의 공통된 생각을 대변한것 이었다.그들
은 김정일의 명을 받아 국문을 열고,특구를 설립하고 개방정책을 시행하여 점차 국제사회와 접목하려는 것이다.그러나 대표단의 구성원,특히 주요 성
원을 보면 모두가 50세 전후로 주로 폐쇄적인 지난 50년을 살아온 사
람들이고 항상 주체사상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이므로 무슨 일에서나 그 흔
적이 드러났다.특구 설립에 대한 북한내의 다양한 견해는 그들에게 무형의 압력이 되었다.그때문에 조심스럽게 ‘개방’과 ‘보수’사이에서 평형을 잡아야 했다.이점이 바로 북한측 대표단 성원들의 심리상태였다.
북한측 대표단 성원들의 이런 처지를 우리는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북
한은 필경50여년 문을 닫아걸고 쇄국을 하였던 나라이므로 간부들의 의식
이 절대로 하루아침에 해방될수가 없는것이 현실이다.간혹 의식이 아주 개방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내놓고 이야기 할수 없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여러번 농담삼아 “뤄교수가 그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였다”고 하였다.뤄교수는 마카오대학의 법학교수인데 홍콩과 마카오의 기본법 제정작업과 회담에 참석했었다.누군가“여보세요,둥원장님,이번엔 원장님이 저분들에게 강의를 하시지요?”라고 하였다.둥원장은 랴오닝대학 법학원의 부원장이다.
결국은 중국 최조로 개혁개방한 사구 특구의 책임자였던 차오성리가 말하는
것이 조선 대표들에게는 더 친절하게 받아들여지고 더 실무적이겠다고 여겨 차오성일가 나섰다.차오성리는 때를 맞추어 북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사구특
구에서 지도자로 있었던 때의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중국은 개혁개방은 1978년에 시작되였습니다.당시 중국은 비추어 볼만
한 참조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저는 1979년에 선전의 사구에 파견되어 갔는데 스트레스가 무지하게 컷습니다.특구가 어떤것인지 중국은 전혀 해본적이 없었습니다.별별 의견이 다 있었고 인식이 통일되지 않았습니다.하부에서만 그런것만이 아니고 고위층 지도자들도 그랬습니다.개혁개방4년이 지난 1982년,덩샤오핑이 선전에 가서 주로 듣기도 하고 간혹 물어보기도 하면서 사흘을 시찰하고서야 비로소 특구를 바로 아시게 되었고 또 긍정해주셨습니다.
저는 선전에서 20여년을 보냈으므로 감회가 깊습니다.자오즈양(赵紫阳)
은 시찰시 우리에게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것은 중국의 현행체제 밖에서 운행하는것이기 때문에 건국 이래의 체제에 따라 한다면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새 체제는 국제시장경제체제에 따라 운행하는 것입니다.신의주 특구는 김정일장군님이 하신 중대한 결정이므로 기필코 성공하여야지 실패
해서는 안됩니다.
양빈총재는 조선인민에게 감정이 깊은 사람이라는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
입니다.양빈총재는 특구 행정장관직으로서 김정일장군과 조선정부에 대하여 책임을 질 일인자입니다.때문에 양빈총재는 일원화한 지도를 실시해야 합니
다.
조선측이 이해해주고 최대한 지지해주기를 바랍니다.”
23일자 회담에서 북한측은 특구장관 수하의 4개 요직의 인사를 가져가
기 위하여 무척 애를 썼다.안간힘을 다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실 양빈과 그의 대표단 성원들도 그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다.특구 수뇌와 그 아래의 4개 요직에 모두 외국사람이 앉으면 그들이 말한것처럼 ‘국내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조소할지 모르는’상황이 빚어질수 있다.심지어는 그들이 ‘매국’한다고 질책할수도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최기에 한 홍군 출신이 선전을 방문했다가“우리가 총과 선혈로 얻어온 천하를 그놈들이 다 망쳐버렸다,변질됐다”고 대통곡했다는 것 이다.이 이야기가 중국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져 나중엔 하나의 웃음거
리가 되었다.하이난도(海南島) 토지경매를 할때도 대표들이 받은 심리적 중압감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있지만 또한 반드시 우리 주장을 강하게 세
워야 했다.두가지 관념상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그러나 앞으로의 회담
은 험난할수밖에 없는것이다.

양빈의 간절한 호소
6월24일,회의는 첫 시작부터 쟁론이 벌어졌다.
북한측 대표 허명규가 첫 포문을 열었다.
“기본법의 순서에 따라 토론하겠습니다.1장과 2장은 이미 통과되었습니다
양총재님께서 이미 토론된 부분에 대해선 지지해주시고 더 변동하지 말기
를 바랍니다.검찰장은 조선측이 추천하여 특구 행정장관이 임명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에 대해 둥롄파가 의문을 제기했다.
“전에 조선측은 입법회의가 임명하게 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허명규는 딱 잘라 말하였다.
“의장과 법원장은 입법회의가 결정합니다.검찰장은 특구 장관이 임명합니
다.이것은 우리나라의 지시입니다.당신들도 이전에 이미 동의하였던 바 이지요.경찰국장은 누가 임명하게 하겠습니까?”
이때 양빈이 급히 나서서 그의 말을 차단하였다.
“네개 직무의 배치문제는 잠시 덮어놓고 다시 기본법 순서로 돌아갑시
다.”
그러나 허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귀측의 토론안에 비추어 말하는데 그 안에 아직 경찰국장이 결정되지 않았습니다.의장과 법원장은 입법회의에서 임명하게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양빈은 이렇게 하면 그 결과가 엄중하리라고 판단하여 화제를 돌렸다.
“저는 밖에서 조선에 시집온 사람입니다.장군님이 이토록 중대한 권력을 저에게 맡기는것은 완전히 저를 믿기 때문입니다.
신의주 특구를 한 척의 대형 항공모함이라고 한다면 저는 선장입니다.
항행중에서 풍랑이 일기 마련인데 풍랑을 혜치고 나아가려면 모두 선장의 지휘에 복종해야 합니다.앞에 짙은 안개가 있더라도 뚫고 나가야 하는데 선원들이 저의 말을 안 들으면 빙산에 좌초하여 침몰할수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저 하나의 책임은 작은 문제이고 조선인민이 큰 손해를 보게 됩니
다.실천이 증명하는바 지도할 권력이 없게 되면 그 사람은 실패합니다.”

좌측부터 마녕、허명규 (조선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 부위원장)

허명규가 또 한마디 하였다.“양측이 다 의장과 법원장의 국적은 개이치 않으니 의회가 임명하게 합시다.”
양빈의 대답은 이러했다.
“제1기 입법회의가 가장 중요합니다.그것은 자유 개방사회의 교과서와도 같아서 외국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볼 겁니다.때문에 의장은 외국인이 담임
하는것이 좋습니다.입법회의 3분의1은 조선측이 임명하고,또3분의1은 장
관이 임명하며 나머지3분의1은 제1기 입법회의가 저의 추천에 따라 임명
하여 도합15명으로 합시다.거주민의 선거는 제2기부터 시작합시다.선거는
아무래도 입법회의 설립후에 할수있는 것이 아닙니까.특구 설립의 전단계는
모든것이 다 금방 시작되고 진행될것이므로 시어머니가 하나만 있어도 저는
매일 가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그렇게 하면 외자유치를 어떻게 하고 사업
을 어떻게 합니까?물론 특구도 커질수가 없습니다.”
“입법회의 의원들도 특구를 위해 봉사하는 만큼 다른 목적이 있을수 없습
니다.”
양빈은 허명규의 해석에 아랑곳 않고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홍콩을 회수하면서 한 사람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그 목적은 외자기업과 자금의 외부 유실을 방지하고 투자자들이 마음을 놓게 하는것 이었습니다.특구가 일단 가동되면 필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모순에 직면하게 될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흡사 2명의 농구선수와 3명의 배구선수 된 팀과 같아 이기기는 커녕 경기전에 자기 팀이 먼저 혼란해집니다.우리 의견을 정리하여 김장군님에게 보고드릴수 없습니까?장군님이 결정하게 합시
다.우리는 장군님이 지시하는대로 집행하겠습니다.”
김동규는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견해 일치를 달성해서 김장군에게 보고드릴것을 희망합니다.”
김동규의 말에서 그들의 주장이 김정일의 의사가 아님을 알게된 양빈은 즉시 말을 이었다.
“저는 특구를 창설할 때 저로 하여금 마음놓고 일하수 있게 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저의 수족을 죄는 건 너무 융통성이 없는 방법입니다.최선의 방법은 네개의 요직에 모두 외국인을 임명하고 규칙에 좇아 운행하는 것 입니다.”
허명구는 여전히 양보하지 않았다.
“지난 선양회담에서 입법회의 15명 중 조선측 8명,양총재측 7명으로 하자고 합의하지 않았습니까?당시 저는 또 둥젠화 홍콩특구 장관은 입법회
의를 관장하지 않는데 양총재는 삼권을 쥐니 걱정이 뭐냐고 까지 하였습니다
.입법회의 가결권과 거부권이 다 특구 장관의 손에 쥐여져 있습니다.외국
사람들은 아마 특구장관의 권력이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크다고 생각할겁니
다.”
양빈이 물었다.
“입법회의 의장은 외국인을 임명할것인지 아니면 선거할것이지요?”
허명규가 대답했다.
“당신이 15명 의원중 한 사람을 추천해야지요.”
김동규도 한마디 곁들었다.
“우리의 목적은 특구가 잘되고 경제가 활성화되게 하자는 것입니다.만약 기본법과 합의서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다시 보층할수 있습니다.우리의 의견은 의장과 법원장은 의회에서 결정하고 경찰국장과 검찰장은 조선측이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양빈은 이렇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저는 마음속으로 굉장히 모순을 느낍니다.저는 진심으로 신의주를 건설하
고자 합니다.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전 신의주 특구 건설을 위해 이전에 사
구특구 건설을 지휘한 일인자 차오성리 선생님까지 모셔왔습니다.여러분의 의사에 따르겠습니다.두가지 제도,두가지 방법인데 어떻게 할것입니까?조선
측이 저에게 일정한 과도기를 주기 바랍니다.우린 사귄지 수개월이고 이미 친구가 되었습니다.김장군님이 저에게 이렇게 막중한 짐을 지워주셨기 때문
에 저는 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되는대로 생가해서 할 일이 아닙니
다.반드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초기 단계의 과도기에는 특구 장관에겐 반드시 권리가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집중되어야 합니다.그 권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김동규의 위안의 말이었다.
“제1기 입법회의에선 거주인이 선거할 의원을 장관이 임명하게 합시다.단 한기만 말입니다.”
양빈의 간곡한 이야기에 김동규는 분위기를 완화기키려는 듯 웃는 얼굴로 마닝을 보며 물었다.
“마선생님,어떤 생각입니까?”
허명규도 농담조로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중앙이 마총재님을 추천할수도 있습니다.”
양빈이 계속 자기 주장을 세웠다.
“우리3명을 추천합시다.”
김동규는 곤경에서 벗어나려 듯 말했다.
“우리 모두의 최종 목적은 하나입니다.모두 하나의 배를 타고 특구를 잘 만드는것이 아닙니까?우리모두 신의주를 세상에서 제일 좋은 특구로 건설할
책임이 있습니다.그러니 서로 다투지 맙시다.일방의 이익을 위해 다투지 맙시다.김장군님이 양총재님을 믿으시니 양총재님은 꼭 과업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허명규가 그 뒤를 이어 말했다.
“사법권에 한해서는 아직 작성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예를 들면 종심권 문제인데 양총재님께 문의하고 싶습니다.최종 결정은 우리 중앙이 하는것이 아닌지요?”
“중앙이 결정합시다.그러나 한가지 보충할점이 있습니다.싱가포르는 자기의 구역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최근 사형제도를 회복하였습니다.그러나 네덜란
드의회는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그들이 저에게 중국이 왜 사형제도를 쓰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만약 신의주에 사형제도가 없으면 거리에 매
일 총격전이 일어나고 납치와 마약 밀수가 성행할것입니다.그러면 특구는 안전감이 없어집니다.아시아 나라는 사형제도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둥롄파도 해석을 가했다.
“아시아 나라는 사형을 하는 나라와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가 각각 절반정도입니다.그러나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종신 감금제도가 있습니다.”
김동규가 말하였다.
“특구 법원의 사형 판결은 반드시 중앙의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우리 나라는 범죄자를 대부분 교도소에 보냅니다.국가반역죄를 범해도 역시 그렇게 합니다.특구에 좋은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서는 외국인들이 특구의 법률을 알게 해야 합니다.사기,마약밀수,납치등 범죄활동이 절대 특구에서 발생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왕후이둥이 한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듣는 말에 중국 정부가 한 책임자를 조선에 보낸다고 하는데 우리는 조선이 중국정부와 특구의 일을 잘 협상하기 바랍니다.신의주 특구는 중국의 지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제안이 없습니까?”
김동규의 물음에 왕후이둥이 아래와 같은 건의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1. 세관 출입문제
(1)단동과 신의주 세관 출입에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무릇 중국과 제3국의 여권을 소지한 사람이면 신의주 특구 출입시 비자 발급을 면제하거나 도착후 발급할수 있다.
 (2)특구 건설시기에 노동자와 사무원들이 노동비자,임시비자,통행
증을 획득할수 있게 하여 관광객,투자자,상인들의 특구 출입을 편리하게 한다.먼저랴오닝성 단동,선양과 다롄에서 시행하고 최후로 베이징,광저우
,상하이,나아가 전국으로 확대한다.
 (3)중조(단동과 신의주특구)양측은 상호 연합검사소를 세우고 세관 집무시간을 연장하여 날로 많아질 인원 왕래를 해결하야한다.특구의 인원 유동과 물류 문제는 극히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은 세관이 토요일과 일요일에 휴식하고 있다.
2. 금융 화폐 문제
(1)중국이 신의주 특구에 중국은행을 개설할수 있게 해야 한다.
(2)신의주에서의 중국 위안화의 유통을 허가해야 한다.
(3)중국의 국유기업,민영기업이 자유로이 신의주 특구에 투자할수 있게끔 해야 한다.이 면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민영기업개인
을 망라한 상호 자금결재가 가능해야 한다.
(4)중국 정부가 중국 시민의 대 신의주 투자,공장설립,상점운영,기업
운영을 격려하기를 희망한다.
3. 무역과 수출입 정책
(1)변경무역,물물교환 등과 유사한 방식을 권장한다.특구 건설기간은  간편한 방식으로 특구의 어업,광산업이 중국과 무역활동을 하게 한다.
(2)특구가 중국을 상대로 무관세정책을 실시한다.중국도 특구를 상대하여 무세관리정책을 실시할것을 희망한다.
(3)신의주 특구는 새로 세운 자유무역구이다.중계무역에 대해서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예를 들면 보세구역 설립등 이다.
4. 통항
(1)신의주 특구로부터 베이징,선양,다롄,상하이,광저우,시안,청두등 중국의 주요도시에 이르는 직통 민용 항로를 개통한다.
(2)신의주 특구 항구의 배가 중국의 주요한 연해 도시에 이르는 여객,화물운송 항로를 개통한다.
5. 중국정부와 특구 정부의 관계를 돈독히 한다.
(1)신의주 특구 정부와 중국 정부 간의 관계를 강화,연락소조를 설치한다.조선측도 포함하여 3방 연락소조를 만들수도 잇다.목적은 특구의 직능을 완벽하게 하고 특구 건설을 강화하는 것이다
(2)중국 정부와 홍콩특구 정부를 초청하여 신의주특구 정부의 행정,기
구,관리를 지도하게 하며 지도자 양성을 진행한다.
(3)외국 관광객과 상인,언론매체가 신의주 특구에 들어오고 왕래가  날로 많아질것을 감안하여 중국 정부가 신의주 특구에 영사기구 혹은 사무기구를 개설하고 관련 사무를 취급할 것을 제안한다.
이상 소개를 듣고 나서 김동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것들을 잘 정리하여 주면 당중앙이 중국 정부와 교섭할때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양빈이 보충하였다.
“조선산 과일과 야채를 변경무역이나 면세 방식으로 중국에 수출할수 있습니다.특구를 경유해 한국과 일본으로,나아가서는 홍콩과 동남아지역
으로도 수출할수 있습니다.”
리수가 한마디 하였다.
“특구가 가동되면 큰 물량의 중국식량,건자재,식품과 생필품이 들어와야 하는데 우리가 무엇으로 그 값을 치러주겠습니까?
조선에는 광산,해산물,어류,과일이 있습니다.이런 것들은 다 중국에 결핍한 것들입니다.변경무역에서 중국에 대한 우대정책이 요망됩니다.”
마지막으로 김사장이 이날 회담 마무리를 지었다.
“이 며칠 기본법과 합의서 회담에서 합의한 부분을 먼저 정리합시다.
우리는 친구 사이니 이견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에 이를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권한을 초월하는 부분은 중앙에 보고하겠습니다.여러분 감사합니다.”

세금문제에 대한 토론
6월25일,우리는 북한측의 안내에 따라 묘향산 명소를 유람하였다.
묘향산맥은 동에서 서로 조선만까지 쭉 뻗어 있다.산맥 북측은 평안북도와 자강도이고 남쪽은 평안남도이다.묘향산 남쪽의 계류들은 설룡강(成龍江)으로 흘러들어 중삼리(中三里)부근으로 대동강과 합류한 후 서남방향 평양으로 흘러간다.
묘향산 주봉은 해발1,909미터로 북한의 이름난 명승지다.부근에 이름난 사원이 있고 웅장한 김일성의 선물궁전이 있다.그안에 진열된 선물들은 모두 여러 나라의 정부와 나라 원수,정당과 국제 친선 인사들이 기증한 것들이다.
전시홀에는 마오쩌둥,류샤오치(刘少奇),저우언라이(周恩來),주덕(朱德), 덩샤오핑(鄧小平)등 중국의 국가지도자와 중앙지도자들이 기증한 선물들과 김일성이 옛날 동북에서 항일활동을 하던 시기 중국 전우들이 증정한 기념물들도 있었다.
기복을 이루며 아득히 뻗어간 산맥,울울창창한 삼림의 바다,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맑은 벽계수,수천마지기 너른 땅을 차진한 사원과 그 안의 하늘을 찌르는 고송들이 더없이 수려한 풍치를 이루었다.
관음을 모시기도 하고 불상을 모시기도 한 여기 저기 몇 곳의 절은 엄청나게 컸지만 관광객이 보이지 않았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다 들릴도록 정적에 잠겨 있었다.때는 찌는 듯이 더운 한 여름이었지만 시원하고 서늘하여 주인측의 의도적인 배려가 가슴에 느껴졌다.
양빈은 불교신자인 듯 하다.그는 선양 네덜란드촌에 몇 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고 그의 사무실 대형 테이블과 유리책장 속에도 금불상 들을 모시고 있다.
또 그의 별장 객실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보아하니 양빈 대표단의 다른 성원들은 이미 이곳에 와본 모양이다.그들은 양빈이 그토록 경건하게 분향하고 굻어앉아 절하고 시주돈을 헌납하고 하여도 누구도 경이롭게 생각하지 않는다.아니면 돈 있는 사람은 다 신령이 자기의 사업이 잘 되도록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것인지?
나는 짐짓 북한측의 김사장,김기수,박성호와 조선 텔레비전 방송의 촬영사들을 유의해 보았다.그들은 한 사람도 관세음과 보살들에게 절하는 사람이 없었다.조선의 국가간부들은 종교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하지
만 그들이 불당과 사원은 매우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묘향산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면서 우리는 만사를 잊고 즐거
운 하루를 보냈다.어쩌면 이 이를 회담석상에서 날카롭게 맞섰던 일도 잊었고 특구의 좋은 이미지를 그토록 강조하였던 이유마저도 잊은 듯 하였다.
6월26일,이날은 이번 제4차 회담의 마지막 하루다.
회담은 여전히 평양문화궁전 3층에서 진행되었다.내가 세어보니 북한측 참석대표는 13명이었다.
김동규 사장이 주인측을 대표해 인사를 했다.
“여러분 어제 수고하셨습니다.”
양빈이 우리를 대표해 사의를 표했다.
“김사장님이 동반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참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김사장이 화제를 회담의 본론으로 끌어갔다.
“기본합의서에 대하여 다른 큰 문제는 없는것 같으데 양총재님께서 별도로 보충할것이 잆는지요?”
“세무문제가 있습니다.”
양빈이 대답이었다.차오성리가 그 문제를 언급하였다.
“특구 경제건설과 발전에는 두가지 차원의 특구정책 문제가 있습니다.하나
는 조선 정부가 신의주에 주는 큰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주 특구 정부
가 외자유치에 주는 특별 정책입니다.만약 주변의 문제들이 잘 풀린다면 바로 이 두가지 문제가 남는것 같습니다.홍콩은 외자유치 여건이 아주 좋
습니다.하나는 경제가 고차원의 발달을 이루었고 다른 하나는 정부사업에 경험이 구비된것입니다.이 두가지 홍콩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한 원인이었
습니다.홍콩은 영국사람들이 하던 방법대로 세금종류를 간소화하고 세금 징수를 가볍게 하였습니다.다만 한가지의 소득세뿐인데 세율이 15%입니
다.전세계 상인들을 홍콩으로 흡인하여 투자를 하게하는데 아주 효과적 이었습니다.투자환경도 좋고 결제 효율도 높습니다.자본과 투자자들이 세계
의 일류로 보는것입니다.
신의주 특구는 정차 세계 각지의 좋은 방법들을 다 배워오고 가장 우수한 인재와 관리를 영입해야 합니다.신의주 특구의 세율은 홍콩수준을 초과하지 말아야 합니다.세금종류도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더욱이 특구 정부 설립10년내에는 과세를 과중,과다하게 하지말아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특구의 외자 유치에 불리하고 특구의 건설과 발전에 불리합니다.이런 말씀을 드리는것은 조선 정부가 특구 세금징수에 별도의 배려를 주었으면 해서 입니다.그렇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극히 힘듭니다.”
허명규가 ‘특구 세율을 15%로 정한단 말씀입니까?’하고 물으니 차오성리는‘10%가 가장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러분의 의견을 중앙에 보고하겠습니다.그러나 저는 특구의 세율을 14%로 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러시아는 35%이거든요.”
허명규가 자기 주장을 말하니 차오성리는 재차 해석을 가하였다.
“중국의 소득세는 3%뿐입니다.선전은 1%고요.적은 세수 낮은 세율은 바로 물을 넣어주어 고기를 키우는 정책입니다.중국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이런 방수양어 정책을 쓴 것은 이미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특구 내의 모든 기업이 모두 세금징수의 원천입니다.저세율은 기업에 고속 발전을 가져다 주므로 세금 징수의 원천이 확대됩니다.
선전 특구는 1998년 시정 기반건설에 5백억 위안을 투입하였습니다.2000년부터 선전의 재정수입은 이미 50억 위안을 초과하였습니다.중앙과 성에 상납한 것은 도합 100억 위안이 안됩니다.남은 자금은 현지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하는데 쓸 수 있습니다.그러니 선전 시장이 시장직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바로 정책으로 훌륭한 세금징수의 원천을 만들어낸 것입니다.앞 단계 15년 간 방수양어 정책에 쓴 돈이 특구의 급속한 발전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것입니다.”
마닝이 보충 설명을 하였다.
“개인과 기업의 소득세는 지방에 돌려집니다.세금징수는 특구를 위하여 양호한 투자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환경이 나쁘면 누가 와서 투자합니까?치안이 안 좋으면 올 사람이 없고 소득세가 높으면 투자자들의 투자의욕이 없어집니다.특구 세금징수는 특구 건설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투자기업들이 첫 1-2년에 적자를 보면 특구도 그 동안 세금징수가 없게 됩니다.제3년과 제4년에 이익을 보더라도 앞에 2년에 본 손해를 보상해야 합니다.그리고 나면 제5년에 비로소 잉여가 생겨 세금징수도 있게 됩니다.우리는 오늘까지도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 하였습니다.얼마 안 되는 돈을 특구 정부의 정상지출에 쓰고 나면 발전은 그만두고 청렴한 행정 유지도 보장할 방법도 없게 됩니다.”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용술 위원장이 발언하였다.
“이익이 산출되는 떄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기로 하고 첫 10년 간 기업의 소득세를 징수하지 않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특구는 감세정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유치한 하이테크기업에 세수 우대를 해주고 특구에 기여한 기업에게는 4년 면제,3년 간 절반 감면해 줄 수 있습니다.그러나 낙후한 기업에는 감세나 면세정책을 주지 않습니다.”
허명규가 한마디 거들었다.
“특구 활성화를 위해서 세금징수 문제는 재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오늘 안건은 국가의 대외국투자자 세금 이윤법 문제입니다.어떻게 하였으면 좋곘습니까?”
양빈이 대답하였다.
“하이테크기업은 10%,기타 기업은 14%로 합시다.이만하면 낮은 것이지요.공동업 세는 3%에서 5% 사이에서 더 높으면 안됩니다.교역세와 영업세를 지방에 주는 것은 재정을 유지하는 상례적인 방법이고 보장입니다.”
허명규가 “입법회의에서 토의합시다.”라고 하였다.
양빈이 말했다.
“외국 상인이 특구에 오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쨰,기반시설입니다.단둥의 전기,물,열에너지와 짧은 시일내에 사용할 수 있는 통신시설입니다.하지만 이것들은 단기 혹은 일정 시기 동안만 단둥에 의거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자신의 것을 건설해야 합니다.통신건설만 하여도 2년 내지 3년의 시간이 걸립니다.수백만 달러를 써서 가장 간단한 통신망을 만들어 쓸 수도 있습니다.총체적 기획은 1천만 달러인데 먼저 내놓아야 합니다.땅을 팔더라도 총체적 기획에 들어가는 자금은 먼저 써야 합니다.
둘째,신의주 홍수방지 시설입니다.토지가 홍수에 잠기지 않고 투자자의 투자 모험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부적 홍수방지 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특구 설립 후 첫 2년은 또한 거액의 자금을 들여 소독도 해야 합니다.
셋째,임시 운송통로 구축문제입니다.단둥서 신의주까지는 연곳 운행하는 부두가 있어야 합니다.이 일은 이미 단둥축과 조화가 되었습니다.중조대교도 3년이 걸려야 준공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그 3년 사이는 어떻게 강을 건넙니까?이런 것은 모두 자금을 조달해서 풀어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외자유치는 다 거짓말이 됩니다.
짧은 시일 내에 최초의 산업이 일어서도록 해야 합니다.관광업은 인적 유동과 물적 유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산업입니다.가급적이면 하루빨리 기획을 해서 하이테크구역,대만공업구역,유럽농업구역,화학공업구역 등등으로 나누어 속히 건설해야 합니다.해야 할 일이 천만 가지이므로 새로운 정부조직을 내와야 합니다.우리는 또 유럽,일본,한국 등 외국에 가서 상담을 하고 외자를 유치해야 합니다.미국도 가서 미국의 국회의원들에게 유세를 하여 우리를 반대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유럽연합도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때문에 유럽의회와도 회담을 하여야 합니다.
또한 중국 정부의 지지를 따내야 합니다.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신의주의 압록강 호텔을 장식하여 특구의 임시 사무실로 써야 합니다.사무원들도 제자리에 들어서야 합니다.저 자신도 거기에 가야 합니다.기획이 나오고 치안이 보장되고 자금이 조달되고 해야 합니다.
지금 부두 건설 위치가 아직도 문제입니다.4백만 톤 규모의 정유공장도 상담 중이므로 곧 특구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국,일본,남한의 기업가들은 하루빨리 특구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허명규가 대답했다.
“특구 정부의 지출을 반드시 보장해야 합니다.그건 문제가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구체적인 것은 후에 다시 상의합시다.”
양빈이 다시 말했다.
“20여 만 조선 인민의 생활문제는 어떻게 합니까?특구 건설이 착공되면 조선 기업이 생산활동을 중지해야 하는데 4만 여 세대가정이 어떻게 삽니까?”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특구가 2만개의 양광온실을 지어서 그들더러 야채를 심어 특구에 공급하게 하는 것입니다.단둥에 수출하여도 됩니다.이런 방법으로 그들은 1년에 2,500달러를 벌 수 있습니다.임대나 도급 방식을 채용할 수도 있습니다.20여 만 인민의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줘서 그들을 안정시켜야 합니다.조선군대를 동원해 온실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생산물은 유라시아 회사가 도와 판매할 수 있습니다.관건은 20여 만 신의주 인민의 안정,치안과 생활입니다.”
김동규가 말하였다.
“양장관은 김장군님이 임명한 것이니 우리는 전적으로 지지할것입니다.우리가 한집안이고 목적도 특구를 잘 꾸리는 것이란 걸 믿습니다.기본법과 합의서의 주요한 부분은 이미 일치를 달성하였습니다.어떤 문제는 아직 통일이 안 됐는데 계속 협상할 수 있습니다.일부 우리의 권한을 초월하는 문제는 우리가 최고회의에 보고하겠습니다.멀지 않아 우리가 다시 선양에 갈 때 여러분이 흡족한 결과에 만족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록 이날 오후에 다른 한 가지 일이 있지만 제4차 회담은 여기서 끝났다고 할수 있다.회담을 끝낸 후 나의 느낌은 성과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양빈이 바랐던 ‘6월 평양회담 떄 조선측 최고회의가 기본법을 통과시켜 발효시키는 것’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물론 토론은 얼마간 진전을 보았다고 해야 하겠지만 이번 회담은 어떤 새롭고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실망을 던져주었다.


주소:홍콩 구룡대각 해휘로18호 일호 은해6단지 18층 C동 방문:시간
Copyright (c) 2008 www.peaceyb.com All rights reserved.